'사랑이 무엇이냐' 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생물학적으로 나보다 어린 사람이다. 순간 나는 손위 사람으로서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즉흥적으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몇 자 적다가 보니까 이게 아니다 싶다.
내가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에 발목이 잡혔다. 무엇보다 나는 그 주제를 논할 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평상시의 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기 일쑤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화가 나면 화를 낸다.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그려진다. 그러니까 내 얼굴은 마음의 그림판이다. 나는 이 그림판 때문에 가끔 당혹스럽다. 싫어도 좋은 척, 불편해도 불편하지 않은 척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얕은 나는 깊은 것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에게 그는 어쩌자고 심오한 질문을 던진 걸까. 추측이 정확하진 않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파생된 심리적 거리가 나의 그림판을 숨겨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거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간격이 있어야 햇볕이 들어오고 바람이 드나든다. 서로 엉기지 않고 이파리도 숨 쉰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 햇볕이 들어 올 간격조차도 아까울지 모른다. 보고 있는데도 그립다. 만지고 싶고 안고 싶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는 마약중독자의 뇌 활동과 비슷하다고 한다.
종일 마음이 붙잡혀 있다.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컴퓨터에서도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이유가 없다. 그냥 좋은 거다. 그냥 보고 싶은 거다. 막을 수 없다. 막아지지도 않는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문제는 집착하고 탐닉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거다. 오르가슴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것과 같다. 강력한 천연각성제인 도파민이나 엔도르핀 계열의 호르몬은 오르가슴을 느낄 때 분수처럼 솟는다고 한다. 안타까운 건 분수처럼 솟는 시간이 7초 정도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온다. 사랑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 '남녀가 서로 애틋이 그리는 일' 이라 풀이되어 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글쎄 제 정신으로 돌아온 뒤에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임수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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