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구용지(口容止)

입력 2010-06-22 10:42:51

조선시대 어린이용 교과서인 '계몽편'(啓蒙篇)은 교훈적인 가르침을 주는 교재였다. 내용이 간략해 처음 문장을 배우는 이들도 쉽게 익힐 수 있는데 천자문 등으로 한자를 깨친 후에 접하는 대표적인 책이다. 계몽편 뒷부분에는 아홉 가지의 올바른 몸가짐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는데 즉 '구용'(九容)이다.

발을 무겁게 하고(足容重) 손을 공손히 하며(手容恭) 눈을 단정히 하라(目容端)는 식이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며(口容止) 목소리는 낮춰 말하라(聲容靜)는 등의 가르침은 현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중에서도 구용지는 가벼운 입이 큰 문제가 되는 요즘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덕목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제 감정을 못 이겨 입을 가볍게 놀리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실언과 망언이 대표적인 경우다. 얼마 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여당 의원이 "천안함 사태가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게 천만다행"이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른 것만 봐도 가벼운 입은 늘 말썽이다.

MB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어제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질문을 똑똑히 하세요"라는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으니까 무슨…. 질문 같은 것을 해야지" 등 힐난조로 말해 의원들의 얼굴색을 하얗게 질리도록 만들었다. 공직자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나와 의원에게 '되지도 않는 말'이나 '아시겠어요?'와 같은 언사를 쓴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이를 국민들이 "그 사람, 정권 실세라 다르네"라고 받아들일까 아니면 "아직 멀었어"라고 반응할까.

정보통신의 발달로 요즘은 인터넷이 입을 대신하는 시대다. 인터넷에 쓴 댓글은 곧 말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에는 상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제 목소리만 높이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온갖 욕설과 비아냥거림이 난무하고 남의 의견은 그냥 깔아뭉개는 글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합리적인 비판은 없고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방하고 저주한다면 결코 양식 있는 사회가 아니다.

이재오 위원장은 경솔한 발언 때문에 몸담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위상을 추락시켰고 스스로도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실언과 망언은 사람을 가볍게 만들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임을 깨우칠 때도 됐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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