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공중학교의 '폭력없는학교' 만들기

입력 2010-06-22 07:06:17

회초리 대신 농구공…"수행평가 도움…벌, 열심히 받아요"

'체벌없는 학교를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논공중학교는 학년별 체육과 수행평가로 기존 체벌을 대신하고 있다.

논공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연중(가명)이는 곧 다가올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밤늦게 공부하다 며칠전 늦잠을 자고 말았다. 허겁지겁 학교로 향했지만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각으로 교문에서 적발당한 연중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벌칙. 다행히 '엎드려 뻗쳐'나 손바닥 맞기 등의 체벌이 아닌 농구 자유투를 해서 50개를 골인시키는 벌이었다. 연중이가 받은 벌은 중학교 체육교과 수행평가 종목 중 하나. 생활지도담당 교사도 회초리 대신 연중이와 함께 농구공을 들고 정확한 슛을 위한 자세를 설명해 주는 등 얼핏봐서는 벌칙을 받고 있는지 운동을 하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벌이 수행평가에 도움이 되어 오히려 벌을 열심히 받게 돼요. 지각을 해서 혼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슛이 정확하다며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요. 선생님도 다음엔 절대 지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체벌을 받을까 걱정했던 연중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이 학교가 지난 4월부터 '폭력없는 학교' 만들기에 나서면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등굣길 풍경이다.

학교 현장에서 늘 뜨거운 감자인 '체벌'. 지역의 한 중학교가 체벌을 대체하는 새로운 수행평가 프로그램을 도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대구 도심 외곽인 달성군 논공읍에 있는 논공중학교는 최근 학부모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과 '학생들의 기초체력 향상' '인성개발'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아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 4월부터 흡연, 복장불량, 명찰 미부착 등 생활규정 위반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확 바꾸었다. 기존에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등 체벌 대신 기초체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줄넘기나 농구드리블 등 학년별 체육과 수행평가로 대체한 것. 단순히 체벌을 주는 것보다 입시경쟁 속에 파묻힌 학생들의 기초체력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바른 인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운동과 생활지도를 연계해보자는 시도였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고 싶어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되려면 무엇보다 체벌이 없어야 하고 학교 폭력까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일단 각종 교칙을 어기거나 흡연을 하다 적발된 학생은 체벌이나 않았다 일어서기 등 단순한 벌칙 대신 체육과 수행평가 항목 중 하나를 골라 이를 완수하면 된다. 예를 들어 '농구 자유투 50회' '배구 언더토스 100개' '윗몸 일으키기' '줄넘기' 등의 수행평가 중 자신이 원하는 종목을 선택할 수 있다.

수행평가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학년별로 선택할 수 있는 벌칙 역시 다양하다. 1학년의 경우 50m달리기, 줄넘기, 청소년 체조, 멀리뛰기, 윗몸 일으키기 등이 있고 2학년은 농구드리블, 자유투, 배트민턴 스트로크, 매달리기, 3학년은 체조, 철봉거꾸로 오르기, 배구 언더토스, 윗몸 앞으로 굽히기 등이 있다. 학생들은 체벌을 통해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은 물론 체력향상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게 됐다.

변화는 학생들의 얼굴에서부터 나타났다. 이전에는 교사들의 눈치를 보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등교하던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3학년 이민우군은 "지난해만 해도 앉았다 일어서기나 팔굽혀펴기 같은 벌을 받으면 하기 싫은 걸 하니까 반항심도 생기고 선생님이 자꾸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은 벌로 줄넘기나 농구 자유투를 하니까 기분도 나쁘지 않고 선생님과도 가까워지게 됐다"고 좋아했다. 같은 학년 김현중군은 "아침에 운동장 걷기 운동을 한 후에 공부를 하니까 학업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이 같은 시도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와의 교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학교 유진권(44) 교사는 "때리고 벌준다고 나쁜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다"며 "학업 등으로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생들 입장에서 만만찮은 체벌효과(?)를 얻을 수 있고 더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접할 수 있어 기초체력까지 향상시킬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체벌의 형식을 조금 바꿨을 뿐이지만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에까지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학교내 체벌이 없어지자 교내 폭력이 없어지고 결국 학생들의 생활태도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동네주민들도 "학교 인근의 불량학생들이 사라졌다"며 반기고 있다.

학부모들도 4월 초부터 '학부모 학교폭력예방 지원단'을 결성해 동참하고 있다. 10여명의 어머니들로 구성된 '학부모 학교폭력 예방 지원단'은 매일 등교시간에 교문에서 학생들을 먼저 맞는다. 아이들에게 엄마들이 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기 위해서다.

학교 측도 그런 변화에 힘을 실어 주고자 전교생과 교사들이 등교시간에 의무적으로 운동장 두 바퀴(600m)를 걷는 운동을 한 후 교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학교 측은 앞으로 학교내 모든 종류의 폭력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미 교내 학생 폭력 및 성폭력 예방 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근 경찰서에서도 이 같은 학교의 폭력예방노력에 적극 동참해 등·하굣길이나 우범지대 순찰을 강화하는 등 폭력 추방운동을 학교뿐 아니라 지역 전체로 확대시키고 있다. 학교에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지역사회로까지 퍼지고 있는 것.

이병연 교장은 "많은 학교에서 손쉬운 체벌을 통해 생활지도에 나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체벌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폭력이고 학생들 간의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는 만큼 학생들이 자유와 책임의 선순환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에 나서고 있다"며 "학부모 봉사단과 지역사회단체와 손을 잡고 폭력예방을 위한 보다 진전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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