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 전투장면 빛바래게 한 구식 애국 스토리
1950년 8월.
파죽지세의 인민군에 밀려 국군은 낙동강을 마지노선으로 최후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 전선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포항을 버릴 수 없었던 강석대는 71명의 학도병을 남겨두고 떠난다. 총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10대 학생들에게 정예 인민군 유격대를 막으라는 임시방편의 무모한 특명이다. 가진 무기라고는 M1 소총 한 자루와 실탄 250발이 전부. 유일하게 전투에 참여했던 장범(T.O.P.)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깡패학생 갑조(권상우) 패거리들은 장범을 무시한다.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막강 화력의 북한군에 맞서 목숨을 던져 싸운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린 전쟁영화다. 북한군의 진격을 11시간 30분 동안 지연시켜 20만명 이상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전략적으로 제작된 영화다.
한때 한국전쟁 소재 영화는 국민들의 반공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선전용으로 주로 제작됐다. 임권택 감독의 '증언'(1973년)이나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년) 등은 잔혹한 인민군에 맞서 싸우는 국군의 무용담과 희생정신을 주로 다루면서 국민들의 반공의식을 계몽했다. 이들 영화들은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권장되기도 했다.
당시엔 스펙터클한 영화가 드물었기에, 한국전쟁 영화는 여러모로 볼거리 있는 영화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 영화들은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는데, 이를 이른바 국책영화라고 했다.
'포화 속으로'는 여러모로 국책영화의 그림자를 따르고 있다.
대대장의 반대에도 목숨을 걸고 학도병을 구하려는 강석대를 비롯해, 글도 못 읽지만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인민군을 모조리 죽이려는 갑조,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장범, 거기에 전쟁광처럼 비쳐지는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 등 국책영화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잦은 슬로모션과 감상적인 음악 등 과도한 비장미가 마치 70년대 전쟁영화를 보는 듯하다. 폭파되는 다리를 배경으로 어깨에 힘을 주며 걷는 김승우, 인상을 잔뜩 쓰며 폼을 잡는 차승원, '친구'의 장동건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는 권상우 등 캐릭터의 구성이 상투적이고, 스토리도 흡인력이 부족해 보인다.
12월에 한여름 장면을 찍는 바람에 옥에 티도 있다. 인민군들이 논을 건너 공격해 오는데, 논은 벌써 추수가 끝나 밑동 잘린 벼만 앙상하게 늘어서 있다.
그러나 전투 장면은 상당히 실감난다. 초반 시가전과 학교를 공격하는 마지막 전투장면은 실제 같은 느낌을 준다. 건물이 부서지고, 포화 속으로 군인이 튕겨져 나오는 샘 파킨파 감독의 '철십자 훈장'의 전투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탱크가 폭파되는 장면이나, 박격포나 바주카포가 발사되고 폭파되는 장면도 사실적이며 박진감이 넘친다.
예전 전쟁영화는 대부분 전쟁 자체를 다루었다. 피아 구분도 뚜렷하고, 대량 물량을 동원한 전투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남성적 취향을 한껏 느끼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 전쟁 영화들은 참혹한 전투에 휩쓸린 인간의 모습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전쟁 자체보다는 전쟁 속에 핀 휴머니즘 등 우회적으로 반전적 시선을 던져준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웰컴 투 동막골' 등이 그렇고 '공동경비구역 JSA'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과거 전쟁 영화 중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이다. 70년대 전쟁영화는 특수효과가 가미되면서 실감이 떨어졌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특수효과가 아닌 실탄과 실제 포탄을 사용했다. 기술적으로 미비된 때문이었다. 그래서 총의 반동 등 상당히 사실적이다.
그러나 더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적(敵) 개념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강대식(장동휘) 분대장이 이끄는 해병부대가 맞서 싸우는 적은 인민군이 아니라 중공군이다. 인해전술을 펼치며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중공군에 의해 우리의 해병들이 한두 명씩 목숨을 잃는다. 좀 더 거시적(?)이라고나 할까.
'포화 속으로'는 과거 회귀적인 스토리에 폼만 잔뜩 들어간 전쟁영화다. 실감나는 전투장면 외에는 마치 70년대 교련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문화교실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엔딩 크레딧에 들어간 영상은 또 뭐람. 러닝타임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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