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知로써 민심을 얻어라

입력 2010-06-14 10:42:34

꼭 1년 전 이맘때쯤 국정원에 초청 강연을 하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MB 정부가 소통 부족의 통치로 중산층이 줄어들고 빈곤층이 늘어나면 내년(2010년)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받고 뒤집힌다." 그러면서 그분들에게 이런 당부도 드렸다.

"정부 조직 중 엘리트 그룹의 하나인 국정원 요원 여러분들이 지니고 닦아온 총체적 지(知)의 에너지를 MB 통치 파이프라인(line)에 전력 주입, 충전시켜 주시라."

다시 말해 살아있는 앞선 정보로 뼈아픈 직언을 하고 귀에 거슬릴 만한 정보나 건의를 양파 껍질 까듯 적당히 벗겨내고 입에 맞게 줄여서 보고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취지였다.

작년 그 무렵의 MB(이명박 대통령)는 반MB 단체와 친북 조직, 좌파 언론 등의 끊임없는 파상공격을 받고 있었을 때였다. 그러다 겨우 지지율이 회복되고 좀 풀리나 했는데 예상한 대로 선거판이 뒤집히면서 다시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에는 측근 몇 명 갈아치운다고 판세가 뒤바뀔 상황이 아니다. 공조직의 지(知)와 민(民)이나 기업의 知가 상호 치열한 게임을 벌이는 시대에 통치 조직의 知가 民의 知를 앞지르지 못하고 뒤떨어지거나 무지(無知)해지면 통치 파워는 방전(放電), 무력화된다.

따라서 통치그룹(공조직)의 知는 民의 知를 꿰뚫고 저만치 더 앞서가며 '민심 읽기'와 처방까지 미리 아는 수준이 되어야 통치권이 힘을 받는 것이다. 정치적 반대 세력의 知에 밀리면 정치적으로도 뒤통수를 맞는다.

작년 이 무렵 MB 그룹을 옥죄인 주된 위협이 좌파 세력 위주의 반MB 압박이었다면 지금의 위협엔 대중의 오심(惡心)까지 덧붙어 있다는 데 위기의 본질이 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열심히 일해도 가족을 배고프게 하고 내 자식이 교육의 차등을 받는다'고 인식되면 그 민중은 금세 저항 세력으로 돌아서게 돼 있다.

그런 계층의 두께를 줄이고 끌어올리는 데 근본적인 통치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 성과를 내고 모든 계층에 다 풍요한 수확을 쥐여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희망이라도 던져 놓고 시간을 벌며 끌고 갈 줄 아는 知가 있어야 한다. 로또 한 장 쥐여주고 기다려 보자면 최소한 그 주일 토요일까지는 혹시나 하고 참고 지내 줄 수 있는 것과 같다.

막무가내 통치권 혼자 머릿속과 책상 위에 비전을 그려 놓고 끌고 가기만 하면 참고 기다려 주는 민심은 따로 놀게 된다. 4대강이든, 세종시든, '듣고 보니 잘되겠구나'는 신뢰와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황금을 쥐고도 대중에겐 구리로 알게 하는 통치는 知의 통치가 못 된다. 세종시 결단도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넣었다 뺐다 칼집이 닳을 지경으로 우유부단함을 보인 어리석음으로 신뢰를 잃은 경우다.

희망이 불투명해 보이면 민중은 반사적으로 현실의 틀을 깨는 돌발 변수(變數)에 기댄다. 개혁이 아니라 확 뒤집히는 수준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다. 이판사판, 자칫 더 크게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보일지라도 그 위험한 쪽을 선택하는 체념적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촛불보다도, 북한의 어뢰보다도 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지금이라도 정부 여당은 야당과 民과의 게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민심이 이판사판 자포자기적인 공황심리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일까를 고심해야 한다. 실직, 불황, 선거 패배의 자중지란 속에 나로호까지 추락하면서 처질 대로 처진 밑바닥 민심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나마 월드컵에서 그리스를 꺾은 쾌거가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지만 분명 위기다. 가상의 픽션이나 충동적인 변설(辨說)이 아니다. 측근 퇴진과 떠나가는 민심으로 한결 외로워진 MB에겐 知의 승부로 정면 돌파하는 길만이 활로(活路)다.

김 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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