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밀양을 잇는 길목 '인재'를 지난 뒤 운문분맥은 '구만능선' 분기점에 올라선다. 그 691m봉서 줄곧 남쪽으로 내려서는 구만능선의 총 주행 거리는 무려 4.5㎞. 종점은 동천(東川)을 사이에 두고 밀양 산내면 소재지 송백리와 마주보는 봉의리 마을이다.
그 부근, 흔히 등산 출발점으로 삼는 '구만암' 인근 지점서 구만능선을 다 걸어 오르는 데는 90분 정도 걸린다. 출발 20여분 만에 주능선에 도달하며, 총 1시간 만에 동편 인곡(봉의)저수지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사실상의 구만능선 첫 봉우리인 738m봉 바로 아래 잘록이다. 서편으로 청도 매전면의 들녘이 훤히 바라다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여기부터다.
거기서 30여분 더 가야 도달하는 구만산(九萬山·785m)의 입지는 좀 묘하다. 운문분맥 분기점과 10분 거리를 두고 솟았을 뿐 아니라, 구만능선 본선에서조차 300여m 벗어난 곁가지에 맺혔기 때문이다. 구만능선에서는 이런 짧은 지릉들이 여럿 갈라져 나가 그 서편 통수골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홉 번 굽는다고 해서 '九彎山'(구만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던가 싶을 정도다.
구만능선 분기점을 지난 뒤 운문분맥은 동그랗게 반원(半圓)을 그리며 방향을 정반대로 돌린다. 그런 주행을 통해 '구만능선'과의 사이에 '구만협곡'이라 이를 만한 '통수골'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수골은 차라리 '용수골'이라 부르는 게 더 실감날 성싶을 정도다. 용수처럼 길게 이어지면서도 품은 매우 좁기 때문이다.
반원을 그리는 중 산줄기는 691m봉 이후 10분 만에 운문분맥 최후의 700m대 봉우리인 712m 암봉에 도달한다. 위세 상실에 심술을 부리기라도 하듯 산길은 그 봉우리를 북으로 휘휘 감아 돌며 10여분 만에 펑퍼짐한 615m 저점으로 100여m 떨어진다.
거기서 5분쯤 오르면 조망이 특출한 660m 덤이다. 임실마을(매전면 남양2리)을 끝내고 사곡마을(남양1리) 공간을 시작하게 하는 경계 산줄기가 북으로 출발하는 기점이다. 전망도 매우 좋아, 덤에서는 비슬기맥 자락의 '학일산' '통내산'이 훤하고, 운문호 및 그 주변 '호산' '개산' '시루봉', 동곡마을 등이 한눈에 짚인다.
이것과 5분 거리에 솟은 668m봉도 좋은 전망대다. 거기서는 사곡마을이 시원히 내려다보일 뿐 아니라, 그 옆 재로 나 있는 등산로를 통해서는 마을로 이어 다닐 수도 있다.
반원이 완성돼 산줄기 방향이 정반대로 확정되는 지점은 '흰덤봉'(682m)이다. 구만능선 분기점(691m봉)과 50여분 거리에 있고 직전 668m봉을 지나면 15분 만에 닿는다.
하나 등산객들은 이게 흰덤봉인 줄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등산로서 보기엔 특징 없는 펑퍼짐한 육봉(肉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흰덤봉 갈림점'이라고만 적혔을 뿐, 흰덤봉이노라 알리는 표지조차 뚜렷하지 않다. 하나 그 서쪽 장수골 골짜기서 올려다보면 그건 대단한 절벽 봉우리다. '흰덤'이라 불리고 '白嶝'(백등)이라 한역되는 암괴 때문이다.
이럴 가능성은 갈림점 표지판서 서북쪽으로 몇 걸음만 올라가도 금방 감지된다. 갑자기 서편 세상이 훤하게 틔면서 산줄기가 급락하는 것이다. 그리로 출발하는 지릉을 타고 조금 내려서면 학생야영장 위에 올라앉은 '전망대'라 불리는 또 다른 애암도 만난다. 이 전망대 바위 지점서 갈라지는 등산로를 따를 경우 한 시간이면 장수골 마을에 닿을 수 있다. 그 마을서 가장 뚜렷하게 올려다보이는 지형이 바로 흰덤이다.
흰덤봉서 내려서는 이 지릉은 지금까지 봐 온 사곡마을(남양1리)과 앞으로 보게 될 장수골마을(장연리)을 가르는 것이다. 도중에 해발 200m의 '애암(崖岩)고개'로 낮아져 두 마을을 이어주기도 하나, 곧 다시 솟아 남북으로 십리나 뻗으며 동창천변 동화마을(호화2리)과 산 쪽 남양리 공간을 갈라붙인다.
현장이 이런데도 등산 안내서·지도 상당수는 엉뚱한 걸 흰덤봉이라 지칭한다. 다닥다닥 붙어 선 682m봉-697m봉-669m봉 중 정답인 682m봉은 놔둔 채 697m봉이나 669m봉을 지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697m봉은 높긴 하되 지릉을 갖지 못한 단순 육봉이다. 669m봉 서편에는 마을서 '명사지굴'이라 부르는 특이한 바위굴이 몇 개 있다. 어지럽던 시절 빨치산이 그 굴에 의지해 살았다는 얘기가 들렸다.
운문분맥은 흰덤봉 구간 이후 남쪽으로 달리면서 용수 같은 통수골의 나머지 외곽선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669m봉 이후엔 1㎞에 걸쳐 해발 500m대로 납작 엎드린다. 이 때문에 통수골 너머 구만능선을 걸을 때 그 낮은 구간을 통해 매전면 온막리 일대의 들판이 훤히 넘겨다보여 놀라기 일쑤다. 거꾸로 온막 쪽서는 구만산이 운문분맥 봉우리인 양 솟아 보여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500m대 구간의 최저점은 해발 545m 재다. 거기엔 서편 장수골과 동편 통수골로 이어가는 등산로가 네거리마냥 나 있다. 동편으로 내려서면 10분 만에 통수골 바닥에 도달할 수 있으니, 그건 그곳 골 바닥의 높이 또한 해발 460m나 되기 때문이다. 그 도달점서 상류로 오르면 구만산이고, 하류로 방향을 잡으면 불과 몇 분 만에 구만폭포에 이른다.
반면 장수골 쪽으로 내려설 경우 온 골 안을 병풍처럼 둘러선 주상절리 같은 직벽 단애들을 만난다. 다른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장수골 마을 입구서 접근할 경우 그 골 끝부분 500m대 능선 아래에 해당한다. 이런 괄목할 풍광들에의 특출한 접근성 때문에 545m재는 매우 중요한 등산 경유점이 돼있다.
500m대 구간을 끝내고 도달하는 곳은 612m봉으로, 그것 또한 좋은 전망대다. 하지만 그 후 15분 만에 이르게 되는 658m봉으로서 운문분맥은 통수골 서편 울타리로서의 역할을 마감한다. 658m봉서 지릉이 내려가 통수골 초입을 가름해 주기 때문이다. 그 산줄기로도 등산로가 잘 나 있다.
658m봉 이후 운문분맥은 약 10분 걸을 동안 펑퍼짐하고 편안한 진달래 군락 구간이다. 그리고는 널찍한 삼거리에 도달하니, 바로 육화산(매전면·675m) 등산로 분기점이다. 하나 실제 육화산 능선 분기점은 거기서 5분 더 가야 솟는 657m 암봉이다. 이 봉우리는 그 능선 서편의 매전면 내리(內里)서 볼 때 매우 뾰족하니 고추처럼 솟아 '고추봉'이라 불려 왔다고 했다.
매전면 장연리 장수골마을서 출발해서 육화산 능선을 오를 경우 육화산까지는 3㎞, 걸리는 시간은 80분쯤 된다고 안내돼 있다. 하지만 45분여 공들여 첫 봉우리인 399m봉에 오르고 나면 힘든 구간은 거의 지났다고 봐도 좋다. 동편으로 이어가는 운문분맥 본능선은 간곳없고 더 동편의 구만산(785m)과 그 아래 738m봉이 주릉 산봉들인 양 솟아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거기다. 그런 특징 때문인지 마을에선 399m봉을 '천지봉'이라 부른다고 했다.
도합 70분 정도 걸려 도달하는 566m봉도 주목해 둘 지점이다. 꼭짓점이 제법 널찍해 식별이 쉬운 거기서는 서쪽으로 산줄기가 하나 갈라져 나가 지나온 장연리와 앞으로 거쳐 갈 내리 공간을 구분 짓는다. 그러는 도중 252m재로 떨어져 두 마을을 이어주고는 다시 463m봉으로 솟아오르니, 그걸 일대서는 '고깔봉'이라 불렀다. 동창천변 도로를 주행할 때 전면으로 매우 솟아 보이는 바로 그 봉우리다. 유독 냇가 쪽으로 튀어나온 게 원인일 터이다.
육화산 능선 분기점인 고추봉을 지나고 나면 운문분맥은 100m 이상 급락하며 30여분 후 산불초소가 있는 561m봉에 도달한다. 밀양 산내면 송백리 및 봉의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좋은 전망대다. 송백리 구간 국도서 올려다 볼 경우 이 산불초소 봉우리는 산내면 중심지의 북서쪽 울타리 종점으로 솟아 보인다.
바로 그런 특징 때문에 분맥 종주객에게 561m봉은 주의해야 할 곳이다. 산불초소에서 남서쪽으로 직진해 평평하게 하강하는 산줄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 산줄기가 바로 561m봉서 더 서쪽의 용전리와 구분 지으며 감아 내림으로써 산내면 중심지를 마감하는 지릉이다. 분맥 길은 초소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급강하, 10분 내에 '오치령'(435m)에 닿는다.
오치령은 운문분맥 남쪽의 밀양 산내면과 북쪽 청도 매전면(내리)을 잇는 고개다. 하지만 양 지역 간 내왕이 빈번한 통로는 아니었다고 했다. 북편 매전면에선 인접 유천장을 보고 남편 산내서는 팔풍장을 봄으로써 생활권이 크게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자동차가 쉽게 다닐 정도로 산길이 넓혀져 있다. 이 고개는 애초 '오치'라 불렸을 터이지만 그 밑 해발 400m 높이에 자리한 산내면 용전리의 한 자연마을이 그걸 마을 이름으로 가져가면서 재 이름이 오치령이라는 겹말로 변해졌으리라 싶다.
오치령을 지난 뒤 운문분맥은 다시 10분 만에 521m봉으로 상승하며, 거기서 서쪽으로 출발하는 지릉이 경남-경북의 도계(道界)이자 밀양-청도의 시군계가 된다. 조금 둥그렇게 감아 돌며 서쪽으로 이어가는 그 분계령 끝 지점이 다음번 살피게 될 '오대'(烏臺)다. 이 분계령 남쪽에는 밀양 상동면 신곡리가 자리하고 북에는 청도 매전면 구촌리와 내리가 분포했다.
북에 있는 두 마을 사이로는 분계령 중간 즈음에서 지릉이 하나 뻗어나간다. 이 지릉 분기점에 솟아 구촌리 동산마을의 앞산이 되고 있는 539m봉을 마을 어르신은 '종지봉'이라 불렀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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