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정치를 즐기자

입력 2010-06-10 11:01:51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했다. 여우는 두루미에게 납작한 접시에 콩국을 담아냈다. 여우는 혓바닥으로 맛있게 먹었지만 두루미는 긴 부리로 접시만 콕콕 찍을 뿐 먹을 수가 없었다. 두루미가 남긴 콩국은 여우가 먹어치웠다.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 생선국을 호리병 속에 차렸다. 긴 부리로 맛있게 먹은 두루미와 달리 여우는 먹을 수가 없었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다. 나와 남이 같지 않은 삶의 여정에서 나와 다른 남을 배려하라는 교훈을 준다.

그러나 남을 나와 같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온 길도 다른데다 살아갈 길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같지 않고 다르기에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한다. 남의 떡이 커보이기도 하고 남들이 입은 옷이 멋있게 비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나 아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엉뚱함을 넘어 제멋대로로 다가오기도 하고 턱도 없는 생각과 말을 지껄인다고 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눈에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노심초사한다. 남은 전혀 관심도 두지 않지만 무심한 시선조차 나를 옥죈다.

잘나가던 사람일수록 남의 시선은 부담스럽다. 남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할 경우 마지막 선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남의 눈을 의식하고 살라고 경계하면서도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라고도 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야 창의력과 독창성을 살려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이래저래 남의 시선을 피할 방법이 없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의 눈에 띄고 싶어한다. 그래야 출세의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윗사람의 눈은 또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마주친 눈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처지가 바뀐다. 그래서 시선은 권력이라고도 한다.

지방선거 전 어느 토론회에서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공천 잡음, 폭력 국회, 예산안 늦장 처리, 정쟁으로 인한 국회 파행 등의 부정적 모습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차갑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의 정치 행태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 선진화에 정치 개혁이 급선무라는 말이었다. 국민들의 눈에 우리 정치가 수준 이하라는 것을 정치권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의 결과를 두고 여야 정당이 서로 야단이다. 야당은 민심의 승리라며 여당을 몰아세우고 여당 안에서는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체장 당선자들도 여야로 갈려 전혀 다른 집단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두가 민심을 들어 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는 의문이다.

국민의 시선이 우리 정치판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일깨운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의미가 있다. 선출직 공직자는 어찌 보면 하루살이 인생이다. 유권자의 시선이 외면하는 날이면 그날로 끝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고서야 민심이 국가적 화두가 됐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저마다 민심을 말하지만 민심은 무엇일까. 동막골 촌장의 말처럼 잘 먹여만 준다면 그나마 참고 견디겠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는 서민들에게 잘나가는 사람들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정치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외면하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정치권의 개혁을 바란다면 국민들이 정치를 즐겨야 한다. 야구나 축구 경기를 바라보듯 밤새워 응원하며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그래야 삼류를 일류로 만든다. 일류정치의 책임과 노력은 말은 없지만 눈과 귀는 열려 있는 국민들의 몫이다.

견제와 균형을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정치의 요체라고 한다. 알 수 없는 세상사 불안한 삶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정치인들의 몫이라고도 한다. 정치란 또 바로잡는 것이라고도 한다. 불공평을 바로잡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라면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할 일이 아닌가.

徐泳瓘 논설실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