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통신] 벽돌 든 강도 취재진 버스 위협 금품 요구

입력 2010-06-10 09:57:31

홍명보재단, 프리토리아서 축구경기장 건립·기증행사

이케지레템바 초교에서 만난 수줍은 표정의 펜요.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케지레템바 초교에서 만난 수줍은 표정의 펜요.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였다.
9일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월드컵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이호준기자
9일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월드컵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이호준기자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전통 옷을 입고 전통 악기인 부부젤라를 불며 월드컵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이호준기자
프리토리아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전통 옷을 입고 전통 악기인 부부젤라를 불며 월드컵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이호준기자

9일 남아공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는 월드컵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도로엔 월드컵 휘장과 32개 출전국의 국기가 나부끼고, 가는 곳마다 긴 나팔 형태의 남아공 전통 악기인 부부젤라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프리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겪은 것은 황당한 해프닝이었다. 취재진을 태운 버스가 프리토리아 흑인 거주 지역을 지나다 잠시 정차하자 한 흑인 남자가 손에 벽돌을 들고 다가와선 버스 기사에게 "돈을 달라. 안 주면 돌로 차를 찍어버리겠다"고 협박한 것. 또 버스가 잠시 주차하자 현지 인솔자는 "차량의 모든 커튼을 닫아 달라"고 했다. 주행 중엔 괜찮지만 주차나 정차할 땐 차 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는 것이 최소한의 안전 대책이라고 해 다시 한번 놀랐다.

잠시 후 홍명보장학재단의 빈민가 유소년층을 위한 축구 경기장 건립·기증 행사가 열린 프리토리아 이케지레템바 초교에 도착했다. 태극기와 남아공 국기가 나란히 새겨진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천연 잔디 축구장에서 신나게 공을 차고 있었다. 맨발로 축구를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엔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때 한 아이가 수줍은 표정으로 기자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은 뒤에도 계속 카메라를 응시하며 직접 찍어 보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카메라를 건넸다. 신기한 듯 이것저것을 만지더니 마침내 기자의 얼굴을 찍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누나도 찍어줬다. 이름은 펜요(Phenyo), 여섯살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축구가 좋으냐고 물었다. 그 중 시아본가(Siyabonga·11)라는 아이가 "축구장이 만들어져 마음껏 공을 찰 수 있게 돼 너무 좋고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도 좋다"고 했다.

이후 프리토리아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한국의 조별 예선 2차전 상대팀인 아르헨티나의 훈련을 보기 위해 프리토리아대 스포츠캠퍼스의 압사 투르크 스타디움을 찾았다. 그러나 경기장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며 훈련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곳 분위기는 한국 대표팀 훈련장과 사뭇 달랐다. 한국 대표팀 훈련장엔 경찰과 한국 취재진만 단출하게 있는 것과 달리 이곳엔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브라질, 일본, 태국 등 세계 각국의 취재진 20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고, 아르헨티나 및 현지 팬 수십명도 모조 피파컵과 자국 국기를 들고 아르헨티나를 연호하며 잔칫집 분위기를 만들었다.

1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해가 질 무렵 마침내 경기장 입장이 허용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감독과 골키퍼 등 일부 선수들의 프리킥 훈련 모습을 10분 정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기다리길 40여분. 가브리엘 에인세 등 2명이 참석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장소 또한 우리나라 대표팀이 경기장 트랙에 작은 백보드판 하나 세워놓고 하는 인터뷰와 달리 수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고 화려한 별도의 인터뷰룸이었다. 이들은 한국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16강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 한국팀이 무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러움과 씁쓸함을 뒤로하고 17일 열리는 아르헨티나와의 조별 2차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꼭 이겨주길 바라며 프리토리아를 떠났다.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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