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성의 미국책 읽기] 분점정부

입력 2010-06-09 07:31:28

데이비드 메이휴 저(2005, 예일대학 출판부)

미국은 대통령제를 세계에서 처음 채택한 국가이고 여전히 가장 순수한 형태의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사실 전 세계에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느슨한 기준으로 헤아려도 40개국을 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이 제도가 전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땐 오히려 덜 보편적인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엄격한 권력 분립과 그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기본 원리로 한다. 반면 내각제는 의회와 내각이 권력을 공유하고 그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국정을 운영한다. 대통령제가 통치의 효율성 및 안정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규율 있는 정당에 의해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가 장악되는 단점정부의 경우다. 물론 이 경우 매우 신속한 정책 결정과 정책 결과에 대한 명확한 책임성의 담보 등의 장점이 있지만 의회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한 다수당에 의한 일방적 국정 운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반면 대통령과 의회가 상이한 정당에 의해 장악되게 되면(말하자면 분점정부 혹은 여소야대 상황의 경우) 여야 간, 대통령과 의회 간 대결은 많은 경우 매우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제하 분점정부에서 발생하는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중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주기적인 선거가 유일하다. 달리 말하면 다음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의회가 동일한 정당에 의해 장악되는 방법 이외의 갈등조정 장치가 없다. 남미의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빈번히 정치적 불안이나 위기로 귀결되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분점정부는 예외적이기보다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인식된다. 1951년부터 현재까지 대략 36년(1955~'61, 1969~'77, 1981~'93, 1995~2001, 2007~2009) 동안 분점 정부 상황에 있었으므로 그 빈도에 있어서 단점정부보다 오히려 긴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여소야대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점정부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분점정부 하에서의 정치 및 입법의 효율성 혹은 안정성이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인해 저하되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여부다. 데이비드 메이휴의 저작 『분점정부』에 따르면 분점정부에 대한 세간의 상식과 달리 분점정부 하에서의 입법의 효율성이나 주요한 정책의 추진 성과가 단점정부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분점정부의 출현은 권력 및 정책의 균형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견제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소위 분할투표자(대통령과 상하원 의원을 서로 다른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유권자)의 증대가 주요한 원인이다.

분점정부 하에서도 미국 정치가 나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우선적으로는 미국 대통령의 역할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선거캠페인 기간뿐 아니라 통치의 과정에서도 탈정파적인 국가원수이며 동시에 당파적 속성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점이 용인된다. 미국 대통령은 당파적인 의제의 입법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러한 대통령의 입장이 문제되지도 않는다. 다만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당파적 의제를 전 국가적, 전 국민적 의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특별한 소통 능력과 설득 능력이 요구되고 성공한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이러한,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1997년 민주화 이래 한국 정치에서 역시 여소야대 현상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국민 역시 권력의 집중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이러한 현상은 이번 6'2지방선거를 통해 서울, 경기, 경남, 강원, 충남에서 자치단체장 소속 정당과 광역의회 제1당이 다른 여소야대 상황이 만들어짐으로써 보다 일반적인 차원의 현상이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지방정치 역학구도가 생겨남에 따라 의회가 행정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적 시스템 작동의 계기가 만들어질지, 아니면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대립 일변도 정치가 지방으로까지 번지는 부작용을 낳게 될지 주목된다. 바야흐로 '소통'과 '설득'이 정치의 화두인 시대가 열렸다.

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