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또^오 중국? 으~음 중국!

입력 2010-06-07 09:16:45

중국 속담에 "세 마디만 하면 직업을 벗어날 수 없다(說三句 不離行)"는 말이 있다. 우리 표현으로 하면 "직업은 못 속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정치 상황들이 거의 모두 중국과 관련 있어 보이는 것은 필자의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북한'일본'미국 모두 중국 정부의 말과 태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현 국면에서는 중국 이야기를 또 할 수밖에 없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방한 전날인 지난달 27일 한 학생이 "중국 총리가 우리 정부의 천안함사건 조사 결과를 지지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주저없이 "그런 우리 바람은 아무리 접대를 잘 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이 답은 정확했다. 중국인이 어떤 행동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은 득실 여부와 친소 관계, 즉, 이득이냐 손해냐, 사이가 가까우냐 머냐 두 가지이다. 이러한 잣대는 중국 정부의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을 두 조건에 대비해 보면, 중국 측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지지할 리가 없다. 한반도의 긴장 고조나 전쟁 발발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피해를 끼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사건 무마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동시에 사태 처리는 두 번째 잣대인 친소관계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는 1993년 경험담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중국사회과학원 외국인아파트 월세는 450달러였는데, 필자는 그 대학 교류처장과 친한 대만 친구의 절친한 친구인 관계로 300달러로 할인받았다. 그런데 한국인 모 교수가 이 사실을 알고 항의를 하니, 그 처장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하고 조 교수는 친구 사이이고 당신하고는 일면식만 있지?"라고 반문하고는 "그런데 어떻게 방값을 같이 받을 수 있느냐"고 하더란다. 중국에서 공정거래는 친한 사람을 우대하는 것이다. 만약 똑같은 대접을 하면 친구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같은 이치로, 중국은 한국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고 북한과는 혈맹 관계로 친소 관계상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 곳곳에 잘 나타나있다. "중국은 어느 일방을 지지하지 않고 공정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며… 책임지는 국가로서 시시비비를 가려 행동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관련 상황자료를 직접적으로 확보하지 못했다(沒掌握第一手情況)"고 한다. 이는 "중국은 양다리를 걸치고 지지 정도를 달리하는 공정성을 유지하며… 세계 질서의 중심국가로서 여타 국가들이 내놓은 조사 결과가 아닌 자국이 내린 판단에 의해서만 책임질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판단할 자료가 손에 없으니 미결사건이 될 것 같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고의인지 실수인지 "북한 편을 들지 않고 우리 측에 책임있게 행동해 줄 것이라"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구차한 구애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에 원 총리는 한국이 알아들으라고, 5월24일 중국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그리고 우리나라 방문 시 직접 전달한 메시지를 방일 시에도 앵무새처럼 반복하였다. 중국은 집단영도체제이기 때문에 한 사안에 대해 나온 발언은 고위층 지도자 누가 한 것이든지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그러므로 중국공산당 수뇌부의 재논의를 거쳐 입장 전환이 결정되지 않는 한, 이 입장은 어떤 회유나 압력 혹은 국제적 분위기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 메시지의 행간 읽기를 정확히 하여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만은 입을 다물도록 하는 묘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실 중국인과의 협상에서 행간 읽기는 성패의 관건이다. 가벼운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 중국인에게 부탁을 했을 때, "연구해보겠다. 혹은 고려해보겠다"고 하면 일단 거절의 의미이다. 이를 모르고 이제 고민이 끝났나 싶어 다시 물으면 더 고려해보겠다고 한다. 자꾸 되묻다가 지쳐서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그런데 연구(硏究)는 연주(煙酒)와 발음이 '옌지우'로 같아 술과 담배, 즉 뇌물이 필요하다는 뉘앙스로 통용된다. 또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할 때도 "싫다"는 말보다 "다음번에"라고 하는데 그 진의를 알기 때문에 다시 묻는 법이 없다.

이처럼 중국인은 '노'를 하지 않고 그 의미를 헤아려주길 바란다. '노'는 상대방의 체면을 깎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체면중시 풍토에서 이러한 대화법이 발달하였다. 우리는 작전필요상 중국식 언어표현의 행간 읽기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조수성 계명대 중국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