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최정윤 교수

입력 2010-06-07 07:43:12

연구팀, SCI급 논문 매월 한 편꼴 올해만 10편 내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최정윤 교수는 지역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연 개척자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최정윤 교수는 지역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연 개척자이다.

'다발성 관절염을 특징으로 하는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성 질환'. 인터넷에서 찾아본 '류머티즘 관절염'의 정의다. 손·발가락, 무릎 등 관절이 부풀어 나무옹이처럼 툭 불거져 나오고, 제멋대로 굽어버리면서 극심한 통증까지 유발하는 질병. 심해지면 아예 거동조차 못하고 평생을 누워 지낼 수밖에 없다. 희귀성 난치병도 아니고 전 국민의 1%에 달하는 50만명 이상이 앓고 있는, 정확히 어떤 질환인지는 몰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그런 병이다. 그런데 아직 원인도 알 수 없다. 안개 속에서 적과 싸우는 형국이다.

◆누군가는 가야 할 길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최정윤(50) 교수. 그가 1994년 류마티스내과를 개설할 때만 해도 지역은 불모지였다. 처음 류머티즘 분야를 시작한다고 할 때에도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 하느냐?"며 주위에서 만류했다. 그런 상황에도 류마티스내과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는 새로운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될 학문적 즐거움이 너무 컸고, 둘째는 누군가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었기 때문이다.

의사, 그것도 류머티즘 내과의사가 된 이유를 물었을 때 최 교수는 3명의 의사 이야기를 했다. 한 명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내과의사이셨죠. 제 기억이 있을 때부터 늘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계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항상 같은 모습으로 환자를 대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도 저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가 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겼다. 다만 어떤 의사가 되느냐가 문제였다.

경북대 의과대학에서 지금은 은퇴한 박희명 교수를 만났다. "1988년에 정년 퇴임하셨으니까 제가 거의 마지막 제자쯤 됐을 겁니다. 회진을 돌 때면 노교수의 경지가 느껴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진단장비가 X-선 사진이나 심전도 정도였습니다. 그런 기초적인 진단을 바탕으로 환자 병력을 듣고 정확하게 병을 읽어내는 교수님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꼈죠. 스승의 표상이셨습니다."

처음 류마티스내과를 개설했을 때만 해도 최 교수 역시 이 분야를 잘 몰랐다. 평소 면역학과 류머티즘을 공부하기는 했어도 임상 경험이 부족했다. 당시 한양대 의과대학에 있던 김성윤 교수를 찾아갔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가 시술을 보고 돌아왔다. 밤이 늦으면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진료를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에 고단함도 잊을 정도였다.

◆하루 잠 자는 시간은 5시간

류마티스내과라는 생소한 분야를 공부할 때도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희열을 느꼈고, 대학병원 교수가 된 지금도 배움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하루 평균 그가 잠자는 시간은 5시간. 진료와 논문 준비, 기초실험실 연구까지 마치고 퇴근해서도 그는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 연구원들에게 과제를 지시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시간도 새벽 1~2시. 연구원들이 제발 이메일을 좀 일찍 보내달라고 하소연할 정도다. 건강비결은 숙면이다.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면 금세 잠이 듭니다. 그리고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잡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할 지 몰라도 환자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맡은 류마티스내과는 3차가 아니나 4차 의료기관입니다. 류마티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마지막 종착역이죠. 여기서 해결해주지 못하면 어디서 치료를 받습니까?"

연구원 3명과 임상간호사 3명까지 두고 기초연구실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도 생쥐를 대상으로 관절염 원인과 치료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밤을 훤히 밝히고 있다. 한번 실험하는데 최소한 생쥐 30여 마리가 필요하다. 한 마리당 4만원. 여기에 연구실 운영비와 인건비까지 최 교수가 감당해야 한다. "전 세계 의사들이 이처럼 함께 노력한 덕분에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됐습니다." 최 교수 연구팀은 매월 한 편꼴로 SCI급 논문을 낸다. 올해만 해도 발표와 게재 논문이 10편 이상.

미국 연수시절에는 관절염 동물모델 실험을 통해 톨유사 수용체(Toll-like receptor)에 대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 '저널 오브 익스페리멘탈 메디신'(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표지로 실리기도 했다. 인용지수가 16에 이르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전문지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조기 치료가 최선

이 때문에 그는 최근까지 대한류머티즘학회 홍보이사를 맡으며 병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매년 10월 둘째 주가 세계 관절염 주간입니다. 2003년부터 관련 캠페인을 국내에서도 하고 있죠. 또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 중 70~80%가 여성입니다. 그래서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류사랑', 즉 여성 류머티즘 환자를 위한 캠페인도 하고 있습니다. 사진전과 음악회도 열었고, 올해는 제주 올레길을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들과 함께 걷기도 했습니다. 병을 알리는 동시에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노력과 꾸준한 연구 덕분에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류머티즘 및 퇴행성 관절염 전문질환센터 지정과 함께 250억원을 지원받는다. 2013년 초에 문을 열 예정이며, 최 교수는 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의사로서 한계도 느끼고 보람도 느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에 이어 딸도 발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대에 이어지는 경우도 있죠. 행여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딸이 류머티즘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듣고나면 대부분 엄마들이 웁니다. 자신이 겪었던 그 고통을 딸까지 겪어야 한다는 아픔 때문이죠. 반면 10년간 누워서 지내다가 결국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온 환자도 있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돼서 나중에는 운전면허증도 따고, 자신이 직접 차를 몰아서 병원까지 온 경우도 있습니다."

원인이 정확하지 않다보니 완치라는 개념도 아직 없는 질병이 바로 류머티즘 관절염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발병 초기 2년간 60~70%가 진행됩니다. 그만큼 조기 치료를 시작하면 병의 진행도 막고, 환자도 훨씬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믿고 가족을 보내주는 사람이 가장 고맙다고 한다. "동료 의사 중에도 가족을 부탁한다며 보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힘든 병임을 알고도 저를 믿고 보냈으니 오히려 제가 고마운 거죠."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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