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은 휴식터'데이트 장소…종교는 생활
이달 중순 미얀마를 다녀왔다. 미얀마는 1989년에 집권 군부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민족도 함께한다는 의미로 종전의 버마에서 바꾼 이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미얀마까지는 직항 노선이 없어 대부분 태국을 통해 미얀마로 들어간다. 지난 3월 베트남항공이 부산 김해공항서 미얀마 양곤 노선을 신설했는데, 베트남 하노이공항에서 3시간 정도 대기한 뒤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필자는 이번이 3번째 미얀마 방문이었다. 처음엔 순수 관광을 목적으로 양곤과 바간을 둘러보았고, 두 번째는 2007년 5월에 초대형 태풍인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휩쓸어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미얀마 여행 동호회에서 관광을 겸해 미얀마의 불우 아동을 돕기 위해 약품과 물품들을 가지고 미얀마길에 올랐다.
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이지만 수도는 아니다. 도시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여 정원의 도시를 연상케 한다. 양곤 시내에서는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해 공기도 맑은 편이다. 현재 수도는 레피도로 양곤서 만딜레이 방향으로 약 300㎞ 지점에 있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전신을 덮쳐오는 공기는 유난히 뜨거웠다. 지금 양곤은 이상기후로 인해 우기에 접어들었는데도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한낮 기온이 45℃를 넘나들 정도로 불볕 더위다.
일찍 저녁을 먹고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IQ라는 나이트클럽에 갔다. 입장료(약 5천원)를 내니 손목에 도장을 찍어줬다. 클럽은 2층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조명이 너무 어두워 한참을 서 있다가 동공을 적응시킨 후 겨우 자리에 앉았다.
에어컨 시설이 없어 벽 곳곳에 선풍기가 힘겹게 돌아가는 정도여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미얀마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종종 전기가 나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하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참 찢어질 듯한 음악 속에서 수십명이 춤을 추는 열기가 뜨거운 순간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 한치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천지가 됐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익숙한 듯 여흥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10대 사찰 중 하나인 쉐다곤 파고다로 향했다. 파고다는 모두 맨발로 입장해야 하므로 더위로 인해 바닥의 돌이 데워진 한낮에는 다니기가 쉽지 않아서다. 양곤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위치에 있는 파고다로 쉐는 황금, 다곤은 언덕이란 뜻이다. 이곳은 미얀마인들에게는 생전에 꼭 한 번 방문해야 하는 메카와 같은 성지다.
1453년 페구왕조 때 건설된 쉐다곤 파고다는 둘레 430m, 높이 100m이며 겉면 전체에 약 7t의 황금이 덧씌워져 있다. 탑 꼭대기에는 73캐럿의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모두 5천448개의 다이아몬드와 2천317개의 진귀한 보석들이 박혀 있다. 우기 때 물에 잠기지 않고,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흙을 높이 쌓아 그 위에 사원을 지었다. 파낸 흙의 양이 엄청나 그 자리에 큰 호수가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깐도지 호수라고 한다.
미얀마에서 파고다는 모든 사람들의 휴식터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장소이며, 젊은이들은 커플끼리 사랑을 속삭이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소풍 온 듯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도 흔하다. 불교 신자가 대부분인 미얀마에서는 종교가 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점심식사 후 바고로 향했다. 렌트한 승용차의 주인 겸 운전사인 린마웅은 한국서 꽤 오래 생활했다며 제법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했다. 영어로 소통이 거의 되지 않는 미얀마에서 현지어가 불가능한 우리 일행이 그를 만난 건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는 불과 며칠 전에 양곤과 만딜레이를 있는 약 600㎞의 고속도로가 개통됐다고 설명했다. 바고 가는 방향이 만딜레이 쪽과 같아서 고속도로를 거쳐 가기로 했다. 산이 거의 없어 시원하게 일직선으로 뚫린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마음까지 탁 트였다. 지평선 끝 부분에 조그맣게 걸친 고속도로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의 푸름을 애써 감추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계속됐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한 시간 넘게 달려도 지나가는 차는 거의 없었다.
바고는 15세기 몬왕조의 고대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하루 10달러에 바고 지역 유적지를 모두 돌아볼 수 있는 티켓을 끊었다. 먼저 미얀마에서 가장 높다는 쉐모도 파고다로 갔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에 비해 규모가 작을 뿐 지은 형태나 모습은 흡사했다. 맨발로 오후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돌 바닥을 걷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쉐달랴웅 와불은 길이가 55m인 불상으로 열반 들기 하루 전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한다. 과거에 이 부처상은 파괴돼 열대 밀림 속에 묻혀 있던 것을 영국군이 철로 건설을 위해 공사하던 중 발견했다. 보수를 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무슨 연유인지 와불 발바닥에 글씨가 잔뜩 새겨져 있었다. 궁금증을 풀고 싶은 마음에다 바고 전체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저녁에 고아원 방문 일정이 잡혀 있어 아쉬움만 남긴 채 양곤으로 돌아왔다.
양곤 현지에서 문 베이커리라는 규모가 제법 큰 식당을 운영하는 정해운 사장을 만났다. 정 사장은 미얀마에서 꽤 성공한 사업가로 2층 건물에 식당 등 여러 가지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100여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여행 전에 다음 카페 미여동(미얀마 여행 동호회, 카페지기 도드람)의 운영자 중 한 명인 정 사장과 "이번 여행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한국서 출발하기 전에 다른 운영자와 미여동 회원들로부터 아동 의류 200여점, 구충제 등 의약품 1천여점을 준비했다. 여기에다 문베이커리에서 만든 빵 200여개를 가지고 양곤 시내에 위치한 고아원을 찾아갔다.
80여명의 원생이 생활하고 있는 고아원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미리 나와서 한쪽에 줄지어 서 있고 원장님이 반가이 우리를 맞았다. 준비해 간 물품들을 아이들 앞에 쌓아 놓고 원장님께 인수를 부탁했다.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은 맑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한 행동을 스스로 잘 했다고 칭찬한 적이 별로 없는데, 이번 만큼은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 눈가가 촉촉해졌다. 돌아서려는데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듯한 아이가 소매를 붙잡았다.
너무 고맙다는 표현과 함께 가난해서 대접할 건 없고, 다같이 노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박수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가슴 한쪽을 깊숙이 파고드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미얀마 돕기 프로그램에 성금과 물품을 보내주신 다음 카페 미여동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황병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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