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54%, 1인당 3만9천원 쓴 셈 '비싼 투표'

입력 2010-06-03 10:32:22

대구 유세車 500대…길에 뿌린 돈만 50억 이상

건국이래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2일 막을 내렸다. 총 투표율은 54.5%로, 전국에서 3천991명이 투표로 선출됐다. 전국 유권자 수만 3천886만1천763명에 이르며 유권자 1인당 8표로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다(多)표 행사의 기회였다. '돈'으로 풀어봐도 이번 6·2선거는 역대 최대다.

◆1인당 선거비용은?

전국의 유권자들은 2일 투표장에서 모두 8표를 행사해 광역단체장(16명)과 기초단체장(228명), 광역의원(지역구 680명·비례 81명), 기초의원(지역구 2천512명·비례 376명), 교육감(16명), 교육의원(82명)을 뽑았다.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는 총 9천834명. 당초 9천929명이 후보자 등록을 했으나 야당과 무소속 후보 간 단일화 등을 이유로 95명이 중도하차했다. 이들이 낸 기탁금만 모두 9억1천만원에 달한다.

선거비용은 사상 최대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는 정부 예산과 선거보조금을 합해 모두 8천310억168만원이 투입됐다. 투입비용은 투표율이 낮을수록 많아진다. 투표율을 100%로 가정했을 때 유권자당 2만1천450만원의 선거예산이 들어간다. 8천310억168만원을 총 유권자 수로 나눈 금액이다.

따라서 6·2지방선거 경우 총 투표율이 54.5%에 그치는 바람에 유권자 1인당 3만9천260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1인당 1만7천810원의 세금을 더 쓴 '비싼 투표'를 한 셈이다. 선거 때마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경제학적 이유다.

◆숫자로 본 선거

중앙선관위가 준비한 선거에 쓰인 투표용지는 3억1천89만3천384장. 용지 100장을 쌓을 때 높이가 1cm가량 되는 것을 감안하면 30km가 넘는다. 지상높이가 249m인 63빌딩의 120배이며 백두산 높이(2천750m)의 약 11배에 이른다. 용지를 펼쳐놓으면 면적은 축구장 684개에 해당하는 474만120㎡이며, 용지를 일렬로 연결하면 길이가 4만4천550㎞에 달해 경부고속도로를 50여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 3억여장의 투표용지 총 무게는 403t에 달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종이 1t을 만들 때 30년생 나무 20그루가 필요하다. 결국 지방선거 투표용지를 마련하기 위해 나무 8천60그루를 벴다. 이번처럼 투표율이 54.5%에 머무를 경우 4천여그루의 나무가 헛되이 베어지는 셈이다.

선거운동을 위한 홍보물의 양도 사상 최대였다. 전국 3천469개 읍·면·동에 총 6만9천여개의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 크기를 가로 10m·세로 1m로 잡을 때 전체 현수막 길이는 693.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 직원 2천600여명을 포함해 선거법 위반 감시요원 7천600여명, 투표관리 인력 2만2천여명, 개표관리 인력 9만여명 등 모두 38만여명이 선거 업무에 투입됐다. 또 32만여명이 투·개표를 위해 일을 했다.

◆선거가 일자리 창출 효자

역대 최대의 돈이 쏟아진 선거판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일부에서는 선거시장만한 일자리 창출 동력은 없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경상북도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경북지역 후보는 도지사 4명, 기초단체장 66명, 광역의원 126명, 기초의원 531명, 광역의원 비례대표 17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82명, 교육감 2명, 교육의원 13명 등 모두 841명. 이들 후보들은 선거법에 따라 기초의원 경우 8명, 광역의원은 10명, 기초단체장은 읍·면·동 수의 3배수, 광역단체장은 자신이 출마한 지역의 읍·면·동수만큼 선거운동원(사무원)을 고용할 수 있다. 따라서 선거운동원과 후보들의 친·인척과 지인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를 포함하면 경북 23개 시·군에서 선거판에 동원된 사람이 최대 7만~8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선관위는 추정했다.

농촌 하루 일당이 3만~4만원인 반면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면 중앙선관위가 정한 수당과 교통비와 같은 실비 보상 등 하루에 7만원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선거판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문경시 선관위 한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는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각 후보 캠프에 등록된 선거운동원보다 훨씬 많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시장 3명, 기초단체장 22명, 광역의원 61명, 기초의원 205명, 광역의원 비례대표 14명, 기초의원 비례대표 29명, 교육감 9명, 교육의원 20명 등 총 363명이 고용한 선거운동원과 자원봉사자를 합하면 2만~3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실제 대구 구청장선거 A후보 캠프의 경우 선거 사무원 44명 모집에 100여명이 지원했다. 또 대구시교육감 후보 B씨 캠프에도 143명 모집에 3배 가까운 인원이 지원해 '선거알바'의 높은 인기를 실감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모집하는 선거감시단 요원도 평균 3.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색 선거 아르바이트 시장도 선거운동기간 내내 떴다. 대학생 이지영(26)씨는 1주일간 서문시장에서 시간제로 일했다. 각 선거 캠프에서 선거 홍보요원에게 입힐 수백벌의 의상을 시장에 주문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옷 개는 일만 하고 시간당 5천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는 매니페스토(공약 정치)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기록전문요원까지 등장했다. 민생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대화 토론 위주의 밀착형 선거 운동을 펼치려는 후보들이 많아 기록을 전담하는 일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유세차량·화훼 귀하신 몸

선거기간 내내 유세차량으로 쓰인 '1t 트럭'과 사무소 개소식용 '화환'은 귀하신 몸이 됐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유세차량으로 주로 활용한 1t 트럭은 품귀 현상마저 빚어졌다. 임대료도 껑충 뛰었다. 지역 한 선거유세차량 임대업자에 따르면 1t 트럭을 선거운동기간(13일)과 차량 제작시간 등을 합한 최대 20일을 빌리는데 200만~250만원이 들었다. 평소보다 20~30%정도 뛴 금액이다. 이 업자는 "여기에 후보자들이 많이 선호한 용량을 높인 고성능 앰프와 조명을 달 경우 보통 1천만원의 임대료가 든다"고 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인기를 누린 에너지 소비량이 적고 화질이 뛰어난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을 탑재한 트럭의 경우 임대료가 최대 3천만원까지 뛰었다는 게 업계 측의 설명이다.

대구시장·교육감 후보자가 10~14대, 나머지 후보자들이 보통 1대 정도 선거유세차량을 운행했던 것을 감안할 때 대구시내 도심에만 500대 이상의 차량이 굴러다닌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유세차량 시장에 쏟아진 돈이 5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꽃집도 선거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대구시 동구 불로동화훼단지 화사랑농원 경우 지난주까지 2주 동안 하루 30~40개의 화환이 선거사무소 개소식용으로 나갔다. 이 농원 관계자는 "5월은 꽃이 많이 나가는 달인데 올해는 어버이날(8일)·스승의 날(15일)이 토요일이어서 평소보다 주문량이 줄어 힘이 들었다"며 "하지만 선거가 임박하면서 꽃 주문량이 밀려 예년에 비해 20~30% 정도 더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 들녘은 일손 부족

선거판으로 사람들이 대거 몰리면서 농촌 들녘은 오히려 일손 부족에 시달렸다. 농사일 품삯보다 최대 2배 이상의 많은 보수로 유혹하는 선거판에 사람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상 저온현상과 영농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번엔 웃돈까지 얹어 일손을 구하느라 농민들의 이마엔 주름살이 하나 더 패였다. 30년째 사과 농사를 하고 있는 김시균(67·청송군 부동면)씨는 "요즘 과수원 1만8천㎡에 사과 열매 솎아주기 작업을 할 때인데, 일손이 부족해 애를 태웠다"며 "예년의 경우 10여명이 작업을 했지만 지난달엔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온가족이 하루종일 작업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다른 농민도 "선거운동 등으로 농촌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일할 사람이 없어 인근 대도시에서 웃돈을 얹어주고 일손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구 불로동 화훼농가 관계자는 "10년째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데 이번처럼 일손을 구하기 어려웠던 적이 없다"며 "지난해에는 일당 8만원 안팎으로 일손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10만원을 줘도 구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낙선보다 더 무서운 선거비용

공직선거법은 헌법의 '선거공영제' 규정에 따라 각종 선거에서 유효 투표수의 15% 이상을 얻은 후보자에게는 선거비용 전액을, 10% 이상~15% 미만 득표자에게는 반액을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10% 미만 득표자는 낙선보다 돈 문제가 더 쓰라릴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10% 득표를 못하면 선거비용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31일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이를 합헌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9.58%의 표를 얻어 3위로 낙선한 김모씨가 "비용보전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선거공영제에 위반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선거비용을 국가가 모두 부담하면 진지한 의사가 없거나 선거를 개인적 목적에 악용하려는 사람들도 자유롭게 입후보하는 등 후보자가 난립하고 국가부담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며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정한 득표를 한 후보자만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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