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해/ 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한 푼 깎거나/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공짜 술 얻어먹거나/ 돈 떼어 먹은 일 한번 없고/ 어느 누구한테서도/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서정홍 시집 '58년 개띠'에서)
'58년, 개띠'는 한국의 베이비부머(baby boomer)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6'25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712만 명(전체 인구의 14.6%)에 이르는 거대 인구집단이다. 이들은 전후의 폐허와 가난을 경험하고 산업화와 민주화, 외환위기 등 격변의 현대사를 겪은 세대이며, 한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주역이기도 하다.
미국에선 2차대전 이후인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7천600만 명이 베이비부머에 해당한다. 일본에서는 패전 직후인 1947~1949년이 베이비붐 시기(800만 명 추산)로 통한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을 '단카이'(團塊, 불쑥 튀어나온 돌덩어리)세대로 부른다.
베이비부머는 국가 정책 또는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베이비부머가 고령화하면서 여러 나라들은 공통의 경제현상을 겪는다. 대표적인 예가 잠재성장률과 부동산가격 하락, 주식시장 정체 등이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 중 일부가 올해부터 은퇴를 시작했다. 그들의 현실은 흘린 땀에 비해 초라하기만 하다. 통계청의 '통계로 본 베이비붐 세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 대규모 사업장의 평균 정년은 57.14세,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 이직 연령을 조사한 결과는 이보다 더 짧은 53세로 집계됐다. 이는 현재 50세인 베이비부머가 일할 시간이 3~7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현재 50세의 기대여명은 32.08년. 따라서 은퇴 후 25~29년을 모아둔 돈으로 지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현실 탓에 고령층(55~79세) 인구에서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취업을 희망하는 비중이 57.6%에 이른다.
베이비부머는 가계경제의 주된 수입원으로 부모와 자식을 모두 부양해야 했지만 정작 본인은 노후를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첫 세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했다.
2006년 기준 베이비부머가 속한 50~59세의 평균 총자산은 3억 7천243만 원이다. 이 중 부동산 비중이 79.8%(2억 9천720만 원)로 가장 높았다. 부동산 가운데 1억 6천470만 원이 주택 보유액이었다.
한국 가구의 자산보유 현황을 보면, 50대 중반에서 최고 정점을 이룬다. 이 시기 이후부터 퇴직으로 인해 통상적인 소득이 줄고 자녀의 교육비와 결혼비용 등 지출이 크게 늘면서 가구 자산은 빠른 속도로 감소한다.
최대인구집단이 무더기로 은퇴하면 그 여파는 엄청나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부동산가격 붕괴)도 베이비부머의 퇴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베이비부머의 집단 퇴장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선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 등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영국은 2006년 고용평등연령규칙을 제정해 채용과 승진, 직업훈련 등에서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독일은 연금 수급연령을 67세로 상향조정한데다 조기연금을 제한하는 등 고령자를 노동시장에 좀 더 머물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프랑스는 기업들이 인원을 감축할 때 연령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지 못하도록 노동법에 규정했다.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확보를 위해 기업들이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고, 정부도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계속고용제도를 의무화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고령사회를 실질적으로 앞당긴다. 고령사회를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령사회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은퇴는 더 이상 휴식, 건강유지에만 신경을 쓰는 황혼기의 시작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속도로 늙어가는 한국은 베이비부머들에게 일자리를 줘야 한다. 한 개인을 위해서도, 국가 전체를 위해서도 그렇다.
김교영 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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