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필관리사'. 생소하다. 말(馬)을 타는 기수나 훈련시키는 교관과 달리 일반인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직업인 탓이다. 하지만 승마에 있어 이들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기수나 교관 등을 보조해 경주용 또는 승마용 말을 사육·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숨은 일꾼이다. 승마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마필관리사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번 주 '기자와 함께'는 일일 마필관리사 체험이다.
◆무서운 발길질 항상 긴장
대구 유일의 승마장인 앞산 대덕승마장. 1992년에 지어진 이곳은 개인 말 40필을 포함해 모두 67필의 말이 보관돼 있다. 우리나라는 보통 경주용 말로 활용하다 7세 전에 퇴역하는데 그때 데려와 관리한다. 말 한 필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훈련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무슨 혈통이고 족보가 있느냐 등이 가격을 결정한다. 일반적인 수입 말은 3천만~4천만원 정도이지만 고가의 말은 1억원이 넘는다. 이에 비해 국산 중 저렴한 말은 300만~400만원도 한다.
말 곁으로 다가가자 순간적으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최소 2m 높이에 무게만 500㎏이 훌쩍 넘는 덩치에 압도당한 것이다. 마필관리 2년 경력의 도영환(47)씨가 주눅 든 기자에게 다가와 "말 가까이 갈 때는 우리도 항상 긴장한다"며 말문을 연다. 말이 언제 발로 찰지 모르기 때문이다. 발굽에 편자(발굽이 심하게 닳거나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붙인 U자형 쇠붙이)가 붙어 있기 때문에 잘못 맞으면 곧바로 병원행이라는 것이다.
"말은 순한 동물이라고들 하잖아요. 혹자는 말이 공격을 전혀 못하고 도망가는 데만 익숙해져 어느 동물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요. 사실 순하긴 순한데 예기치 못한 발길질은 정말 위험해요. 이곳에 근무하는 마필관리사 중에도 병원에 실려간 사람이 있어요." 이 때문에 말의 정면이나 후면에는 절대 있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작업을 할 때는 옆이나 말의 45도 각도에서 하라는 것이다. 또 동작을 취할 때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야 한다. 빨리 움직이면 겁이 많은 말이 놀라 곁에 있는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씨는 기자가 신을 안전화를 내놓는다. "제가 신은 안전화에 여기저기 찢어진 부분이 보이죠. 여러 차례 말한테 밟힌 결과죠. 안전화를 꼭 신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죠."
도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4명의 마필관리사 가운데 가장 새내기다. 오래된 이는 11년도 넘었다고 한다. 그에게 마필관리사에 대해 물었더니 불만 섞인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외국에는 마필관리사라고 하면 말에 대해 전반적인 관리를 하면서 대우도 좋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자격증이 없고 급여도 너무 짜요. 특히 경마장이 없는 대구는 열악하기 짝이 없죠. 승마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마필관리사에 대한 대우와 급여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합니다."
◆마장 청소
마주로부터 '시드니'(말 이름)를 준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시드니는 이곳에 있는 말 중에서도 가장 순한 말 중 하나. 안심이 되어서인지 도씨는 안장을 올리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주고서 직접 해보라고 지시한다. 마방에서 말을 데리고 나올 때 말에 수장굴레를 씌운다. 그러고 나서 수장대에 말을 묶고 턱끈과 뺨끈 등으로 구성된 굴레로 바꾼다. 이후 안장깔개(재킹)를 올리고 패드를 다시 올린다. 그 위에 안장을 올리고 복대를 연결해 고정한다. 너무 복잡하다. 순서를 가르쳐주는데 한번 만에 '접수'가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안장을 올리고 복대에 연결하는 동작만 해봤다. 안장이 묵직하다. 말 등에는 등뼈가 있어 그냥 타면 아파서 오래 타기가 어렵다. 이때 안장이 필요한 것이다.
말에게 가장 위험한 병은 뭘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장이 90도로 꺾이는 '배앓이'라고 한다. 말은 위장이 짧고 장이 무척 긴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운동을 격하게 하거나 음식을 잘못 먹으면 장이 꼬여 배앓이를 한다. 문제는 치료를 과천마사회와 부산마사회 수의사들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사들이 이곳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말은 그 사이에 죽을 수도 있지요. 물을 강제로 먹여 장운동을 시키거나 손을 항문에 직접 넣어 음식 찌꺼기를 꺼내는 응급처치를 하기도 합니다."
마주에게 말을 건네고 마방 청소에 나섰다. 마방의 면적은 보통 3.5㎡ 정도. 도씨는 마방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말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왔다는 것을 인식시키고서 마방 문을 열어야 한다. 말이 뒤돌아 있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난동을 부려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다가가자 고개를 뒤로 돌리는 말도 있고 귀를 뒤로 젖힌 말도 있다. 이것은 처음 보는 이를 경계한다는 뜻. 방심하고 문을 열었다가는 공격을 당할 수 있다고 한다.
도씨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마방에는 말 특유의 배설물 악취가 코끝을 찌른다. 시커멓고 축축한 흙 위에 군데군데 동글동글한 배설물이 모여 있다. 하지만 바닥에 깔린 것은 흙이 아니라 톱밥이라고 한다. 말이 수시로 오줌을 싸면서 축축해져 마치 흙처럼 보인다고 한다. 커다란 삽으로 파니 어느새 손수레가 가득 찼다. 도씨는 매일 수십 개의 마방을 청소하고 깨끗한 짚으로 다시 덮어준다고 했다. 그는 "삼시 세끼 꼬박 먹으니 내놓는 배설물 양도 많다"며 혀를 내두른다.
"사람들은 보통 말이 서서 잔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처럼 벌러덩 누워서 코를 골기도 하고 방귀도 뀝니다. 할 것 다 하죠. 단지 잠을 사람의 절반 수준인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마방 안쪽에 달린 분홍빛 벽돌이 눈길을 끌었다. '저걸 왜 달아놓았을까'라고 생각하는데, 도씨는 그것이 벽돌이 아니고 소금이라고 설명한다. 말은 평소 짠 걸 먹지 않기 때문에 나트륨 보충을 위해 소금을 핥기 좋게 고체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목욕 시키기
승마를 마친 말들이 들어온다. 마방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을 시킬 차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라 야외 목욕하기 더없이 좋다. 하지만 사실 말들은 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호스로 물을 쏘아 샤워를 시키는데 이것 또한 순서가 있다. 아무렇게나 물을 쏘는 것이 아니라 앞발→뒷발→엉덩이→등골→머리→심장 차례로 서서히 물을 뿌려주어야 한다.
머리 부분에 물을 쏘아주자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말이 고개를 계속 돌린다. 샤워를 시키면서도 위치 때문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언제 날아올 지 모르는 발길질이 두려워 나도 모르게 말에게서 멀어진다. 도씨는 "좀 더 가까이 가라"고 계속 주문했다.
샤워를 마친 뒤에는 솔로 물때를 빼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균이 생긴다고 한다. 솔로 등줄기를 중심으로 긁어주면서 물때를 빼준다. 털이 많아 한 차례 긁을 때마다 물이 쫙쫙 빠져나간다. 말도 시원한지 모처럼 가만히 서 있다. 그런 뒤 다시 마른 수건으로 닦아준다. 보통 정성이 아니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씨는 "보기와 다르게 정말 손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는 말을 자기 자식처럼 보살펴주는 부모와 같은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못한다고 한다.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말과 온종일 생활하니까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는 거죠. 대부분의 직업이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는 데 비하면 마음 편해요. 앞으로 전망도 있기 때문에 처우가 개선된다면 이만한 직업이 없어요."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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