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조 들여다보기] 청강에 비 듣는 소리

입력 2010-05-29 07:27:45

청강에 비 듣는 소리

효종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긔 무엇이 우읍건데

만산홍록(滿山紅綠)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리 우을대로 우어라.

5월이 간다는 것은 봄이 간다는 것이다. 봄이 간다는 것은 이어 여름이 온다는 것이다. 위 작품을 표면에 드러난 뜻으로 읽으면 "맑은 강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 무엇이 우습기에/ 산에 가득한 풀과 풀들이 휘어들면서 웃는구나/ 두어라, 봄바람이 이제 얼마나 남았으리 웃고 싶은 대로 웃어라"라는 의미를 가져,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시조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깊은 뜻은 작자의 삶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효종은 조선 17대 왕 인조의 둘째 아들로 소현세자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위에 올랐다.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 청에 볼모로 잡혀가 9년간 온갖 고초를 겪고 돌아와 왕위에 오른 뒤, 병자국치를 씻고자 온갖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10년 만에 붕어하여 북벌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청나라에 끌려갈 때 쓴 것으로 추측된다. 자기가 청나라로 끌려가는 것은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정도의 소란스러움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이 우습다고 웃는 꽃과 풀들이 도리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풀과 꽃들을 적군에 비유한 것이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비유가 뛰어난 작품이다. 종장의 '봄바람'은 뒷날 효종의 북벌 계획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강한 복수 의지를 나타낸 시어로 읽어도 좋겠다.

대군의 자리에서 청에 볼모로 잡혀가는 것은 얼마나 치욕스런 일인가. 그렇게 잡혀가며 얼마나 서러워했을 것이며 얼마나 치를 떨었겠는가. 그런 수모를 씻을 복수를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왕위에 오른 뒤 북벌 계획을 세운 것도 그때의 수모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어렵지 않다.

2010년 한국의 봄은 어지러웠다. 북한의 천안함 어뢰 공격으로 참으로 아픈 봄을 보내게 했다. 봄의 끝자락엔 의심할 여지없이 북한의 공격이란 명백한 증거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국내에서도 참 얼토당토않은 발언을 하는 인사들이 있어 매우 걱정스럽게 한다. 올해는 6·25전쟁 60주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효종의 이 작품이 오늘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암시해주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문무학 (대구 예총회장 · 시조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