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객원기사로 11년 여류기사들 왕언니 역할…아시안게임 중국 대표로 선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이 올가을 오성홍기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한국 여류 기사들의 '왕언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루이 9단이 어쩌다 '동지에서 적'으로 한국 여자대표팀에 칼날을 겨누게 됐을까.
루이 9단은 이달 10일 끝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중국바둑팀 여자 선발전에서 7승 3패를 거두며 중국 여자바둑팀 대표로 선발됐다.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에는 후보 1명을 포함해 4명이 출전하는데 중국은 루이 9단과 함께 송용혜 5단, 탕이 2단 등 3명을 선발했고 조만간 와일드카드로 나머지 1명을 내정할 예정이다.(중국과 금메달을 다툴 한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여자 상비군을 운영 중이다. 6월 초까지 10명 1개조 리그를 5회 진행해 누적 점수 상위자 2명을 대표로 선발하며 나머지 2명은 6월 21일부터 7월 초까지 열리는 2차 선발전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1963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루이 9단은 벌써 마흔여덟이다. 올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 종목에서 국가를 대표해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루이 9단을 중국 대표 선발전에 참가하게 한 동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루이 9단은 1999년 3월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사숙(師叔)인 조훈현 9단과 차민수 4단의 도움으로 한국기원에서 초청 비자를 받자마자 루이 9단은 미국 LA에서 서울행 비행기에 남편 장주주(江鑄久) 9단과 함께 몸을 실었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생머리도 잘랐고 라식 수술로 두꺼운 돋보기 안경도 벗어던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루이 9단은 중국기원과 갈등을 빚은 장주주 9단을 좇아 모국을 떠나 일본과 미국 등을 방랑해 왔다.
한국에 온 지 1년도 채 안 된 2000년 2월 루이 9단은 제43기 국수전에서 이창호'조훈현 사제를 연거푸 꺾고 국내 최고(最古) 타이틀인 국수에 이름을 올렸다. 여류 기사로는 세계 바둑 사상 최초로 본격 기전 우승을 차지하는 금자탑을 세운 루이 9단의 활약은 장안의 화제가 됐고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축전까지 받았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특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이루어 낸 쾌거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루이 9단과 부군께서 자아 성취와 세계 바둑 발전을 위해 큰 힘을 쓰신다는 소식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셔서 더욱 빛나는 별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루이 9단의 가정과 한국기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00년 2월 22일 대통령 부인 이희호'
한국에 건너와 첫 대국으로 기록된 1999년 4월 13일 제4회 LG배 통합예선에서부터 현재(5월 29일)까지의 통산 전적은 584전 374승 210패, 승률 64%지만 여류 기전에서만 거둔 성적을 놓고 보면 127전 105승 22패, 승률 82.7%의 가공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타이틀도 국수전을 포함해 26차례나 획득했다. '반상의 마녀(魔女)' '철녀(鐵女)'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국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은 루이 9단은 2001년 5월 열린 제65회 한국기원 상임이사회를 통해 객원 딱지를 떼고 한국기원 정식 소속 기사로 받아들여졌다. 루이 9단은 2003년 개인전으로 열린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중국 선수(장쉔 8단)를 물리치고 우승까지 했었다. 세계 기전에서 국가단체전은 국적별, 개인전은 소속 기원별로 출전하는 것이 관례다.
뭐니 뭐니 해도 루이 9단의 가장 큰 공적은 한국 여자바둑 실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9단이 한국에 정착하기 전인 1999년 이전 한국 여류 바둑의 실력은 중국은 물론 일본에조차 뒤졌었다.(1999년 이전 여자세계대회에서는 중국이 우승을 휩쓸었다) 그러나 루이 9단을 받아들인 이후 세계대회에서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박지은 9단이 3차례(정관장배, 대리배, 원양부동산배), 윤영선 7단이 1차례(호작배) 우승을 차지했고 3회 대회부터 국가대항전으로 바뀐 정관장배에서도 여섯번의 대회에서 중국과 3차례씩 우승을 나눠 가졌다. 루이 9단은 한국기원에 오기 전 일본기원에 먼저 활동 여부를 타진했었지만 일본 여류기사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일본 여류바둑은 부진과 침체에 빠졌고 한국 여류 기사들은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현재 국내기전 3관왕(여류국수'여류명인'여류기성)인 루이 9단은 본인을 제외한 43명의 국내 여류 기사 중 28명과 맞대결해 26명에게 우위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이 '원투 펀치'로 생각하고 있는 박지은 9단에게 14승 8패, 조혜연 8단에게 32승 16패로 앞서 있다. 다만 단 한차례 맞붙었던 김미리 초단에게는 1패를 기록 중이며 이민진 5단과는 3승 3패로 호각이다. 객관적인 전력 자료는 물론 한국 여류 기사들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을 루이 9단이 중국 대표로 출전하는 게 한국으로서는 찜찜할 수밖에 없다. 루이 9단을 꽁꽁 묶을 대비책을 어떻게 마련할지 대표팀 감독인 양재호 9단의 시름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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