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입력 2010-05-27 10:17:42

지방자치의 현실과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시장과 교육감을 포함하여 무려 8명을 뽑는 사상 최대 규모의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4년 동안 지역의 살림살이와 주요정책들을 결정하고 집행할 중요한 선거인데도 유권자는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후보자 수가 너무 많고 선거방법 또한 복잡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후보자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 없다고 말한다.

어렵게 도입돼 주민 스스로 지역의 대표자를 뽑는 소중한 지방자치제도가 왜 이렇게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변호사 출신이면서 시민운동에 오래 몸담아온 하승수 제주대 교수의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저자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지방자치가 부활된 과정에서부터 누가 지방선거를 통해 제도 정치권으로 진출했는지 꼼꼼히 살펴본다. 지금까지 치러진 지방선거들은 낮은 투표율과 지역주의 투표 행태에 따른 지역별 1당 독점 현상 지속, 중앙정치의 강한 영향력, 극히 미미한 여성 당선자 비율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면 주로 어떤 사람들이 지방의회 의원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일까? 1991년과 1995년 지방의회 선거 결과에 따르면 건설업,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들은 그동안 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력자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 주민 동원 및 통제 조직으로 기능하던 관변단체 출신이었다. 2005년 6월 한겨레신문의 조사 분석에 따르면 전체 1천126명 가운데 37.5%인 422명이 3대 관변단체(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운동, 자유총연맹)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정치인과 공무원의 비율이 매우 높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방정치의 현실을 보면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까지 이르렀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역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지방정치를 장악하고 지역 민주주의를 퇴보'정체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들은 상업, 건설업 등에 경제 기반을 두고 있거나 부동산 개발 이익과 연루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제도 정치권에서 풀뿌리보수주의를 고착시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한국의 지역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묻는다. 사실상 지방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지역 토호들은 건설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적극적으로 개발 사업을 벌이려고 한다. 민주화 이후 대거 지방의원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한 관변단체들, 지역 토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방언론, 중앙정당과 중앙 정치인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대다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이들이 지방정치와 재정을 마음대로 요리해온 것이다. 그 결과 수도권 집중심화와 지역의 불균형 발전, 농산어촌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희망은 없는 것일까?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지역과 지방자치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주민 참여를 확대하고 지방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며, 제왕적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주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지방자치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또한 관변단체에 대한 특혜성 지원을 없애 지역 시민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빈대가 밉다고 초가삼간을 불태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새벗도서관 관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