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구두창', 넉자로는 '구두깔창'이다. 1953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외모나 스타일이 젊다. 마인드는 더 젊다. 톡톡 튀는 대학생보다 더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사고하기 때문.
구본창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인천에서 태어났다. 딸에게 돈을 빌려줘도 이자까지 철저하게 받는 개성상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서울 동대문에서 섬유계통의 제조업체를 경영한 부친은 3남3녀에게 어릴 때부터 개성상인의 정신을 몸에 배도록 해줬다.
여기에 우수한 DNA도 물려줬다. 이 집안에서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건 공부 못하는 것이여'라는 얘기를 듣는다. 3남 중 형과 막내는 서울 명문 고등학교 수석 입학, 서울대 최상위권 입학 및 졸업이다 보니 연세대도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도 그랬다. 지난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형은 구본영(전 OECD 대사'전 과학기술처 장관), 동생은 구본철(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무난한 편이다. 하지만 둘째는 짓다 보니 창(昌)이 됐다. 어릴 때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고, '구두창'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구본창'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느낀단다. '창'이라는 이름이 닫힌 음이 아니라 뻗어나가는 음이라 부르기 좋고,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으니 더 좋은 이름이 어디 있으랴.
집안에서 차남에게 바라는 무난한 기대에 입각해 대우실업에서 6개월간 일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은 평범한 회사원의 인생이 아니라는 걸 이미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공부하기 위해 조그만 수출회사의 독일 주재원으로 자원해 함부르크에서 제2의 인생을 펼쳤다.
이 선택은 구본창의 인생에서 두고두고 잘한 선택이자 지금의 구본창이 있게 해 준 운명이 됐다. 6년의 독일 생활은 그의 깊은 감수성과 독특한 사물 관찰력에 사진디자인의 이론과 실제를 더해 사진 분야에서 대성할 수 있는 폭발력을 갖게 해줬다.
그 후로는 '구본창'(具本昌) 이름 석자가 대한민국과 독일이라는 무대가 좁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미국 뉴욕'휴스턴'필라델피아'샌프란시스코, 일본 도쿄'교토, 덴마크 아루스,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브리즈번, 프랑스 파리 등 세계 곳곳에서 작품전을 열 정도로 활약했다.
그러는 사이 교단과의 인연도 생겼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계원조형예술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강단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고 다시 필드에서만 뛰었는데 이 무슨 운명이랴. 2010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산 하양의 경일대 사진학과 전임교수로 오게 됐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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