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어린이 공부방 지도교사

입력 2010-05-22 07:46:16

질문 하나 설명하는데 5분씩 씨름…독서·놀이땐 장래 희망이 묻어나

공부를 마친 뒤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를 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아이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공부를 마친 뒤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를 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아이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산격종합사회복지관이 있는 산격주공아파트에는 5곳의 놀이터가 조성돼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산격종합사회복지관이 있는 산격주공아파트에는 5곳의 놀이터가 조성돼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어린이는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헌장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5월 어린이의 달을 맞아 기자는 우리의 희망이 자라고 있는 어린이 공부방으로 출동했다.

'처음 본 선생님 모습에 혹시 아이들이 낯설어하지 않을까' '아이들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기자가 찾은 곳은 산격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어린이 공부방 '아이누리'다. 38명의 초등학생들이 함께 부대끼며 꿈을 키워 가는 곳이다.

공부방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운영된다. 오후 2시 저학년들이 먼저 와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4시에 고학년들이 나타난다. 저학년과 고학년이 함께 있는 오후 4시에 공부방은 제일 붐빈다. 공부방에서는 학습지 풀이뿐 아니라 특별활동과 다양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을 키워주고 있다. 공부방 이용은 무료지만 피아노와 태권도 특별활동은 유료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피아노는 월 3만원, 태권도는 월 1만5천원의 수강료를 내야 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38명 가운데 15명은 이마저도 못 배운다고 한다. 공부방에 온 아이들은 공부와 특별활동을 마친 뒤에도 한참을 놀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저녁 급식까지 제공되기 때문이다.

◆학습지도

학습은 국어·바른생활·슬기로운 생활·수학 문제를 돌아가며 매일 조금씩 풀고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선생님은 보통 3명이 배치된다. 상주하는 공익근무요원 1명과 대학생 자원봉사자 10명이 요일을 정해 2명씩 나온다. 선생님 한명당 10명의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붐빌 때는 손이 모자란다. 특히 아이들마다 학습 수준이 달라 심도 있는 학습을 위해 1대1 지도가 필요하지만 자원봉사자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국어 문제를 푸는 날이었다.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데다 과거와 달리 요즘 아이들 학습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말을 사전에 들었던지라 조금 일찍 도착해 미리 책을 들여다 봤다. 교과 내용이 기자가 학교에 다닐 때와 판이하게 달랐다. 단답형이었던 과거와 달리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답을 찾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다시 엄습해 왔다.

시계가 2시를 가리키자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하나 둘 공부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같이 책가방을 한쪽에 놓고 자기 이름이 적힌 학습지를 들고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공부방을 찾은 아이들은 대부분 나이에 비해 의젓하다.

조금 있으니 지윤이를 필두로 나연, 지현, 이래가 차례로 문제를 푼 뒤 기자에게 가져왔다. 답을 맞춰 봤더니 대부분 한 문제 정도 틀릴 정도로 잘했다. 조금만 설명해 줘도 잘 이해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문제를 풀다 "선생님 모르겠어요" 하며 달려온다. 문제(인물의 기분이 잘 드러나게 말하려면 인물이 처한 OO에 맞게 말해야 한다)를 읽어보니 초등학교 1학년이 풀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답인 상황의 개념부터 이해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 벌어졌다. 손짓, 발짓뿐 아니라 기자가 아는 최대한의 쉬운 용어를 동원해도 시원스럽게 해소되지 않았다. 5분여를 씨름한 끝에 겨우 설명을 마쳤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을 새삼 깨달았다.

◆놀이지도

학습지도를 마치고 아이들과 형생색색의 점토로 만들기 놀이를 했다. 점토를 가져다 주자 무슨 색깔을 선호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이들 성격이 금방 드러났다. 태권도복을 입고 온 나래는 점토를 주자 대뜸 햄버거를 만들겠다고 나선다. 옆에 있던 지현이도 햄거버를 만들겠다며 거든다. "다른 것도 많은데 왜 햄버거를 만드니"라고 물으니 "좋아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민경이는 점토를 국수처럼 길게 말고 있다. "뭐 만드냐"고 물으니 "팔찌를 만든다"고 했다. 한참 동안 손바닥으로 점토를 비빈 뒤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내 손목에 걸어준다. 기자 선생님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참을 쳐다봤다.

점토 놀이를 하던 중 "오늘 처음 온 선생님께 누가 동네 소개 좀 해주세요"라는 복지관 직원의 말에 민경, 나래, 윤지, 지혜가 서로 자기가 안내해 주겠다며 난리다. '서먹서먹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기자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사람을 만나는데 계산적이 돼 버린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금방 친구가 된다.

산격종합사회복지관이 있는 산격주공아파트 내에는 5곳의 놀이터가 조성돼 있다. 아이들의 즐거운 성화에 4곳의 놀이터를 돌며 놀았다. 아이들의 놀라운 체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과의 숨바꼭질 같은 놀이에 기자는 금방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아이들과의 놀이는 나래, 윤지, 지혜가 태권도장에 가야 한다며 인사를 한 뒤 쏜살같이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태권도장을 다니다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는 민경이 손을 잡고 다시 공부방으로 돌어오자 공부방이 아까와 달리 시끌시끌하다. 4시가 가까이 되면서 고학년들까지 들이닥친 까닭이다. "한창 붐빌 때는 정신이 없어요. "라고 했던 복지관 직원의 말이 실감난다.

문제 풀이를 마친 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공부방을 나갔던 지현, 나연, 이래가 아이들 틈속에서 눈에 띄었다.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 같이 읽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책꽂이에서 가져오는 책을 보니 각자의 장래 희망이 묻어난다. 지현이는 '내일은 실험왕'이라는 책을 가져왔다. 지현이의 꿈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확인차 물었더니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과학자 중에서는 아인슈타인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했다.

민경이의 장래 희망은 가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경이는 곤충도 좋아한다.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 '뿔쇠똥구리와 하늘소' 같은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책읽기를 했다. 기자가 한 문단을 읽으면 아이들이 차례로 다음 문단을 읽어내려 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아이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자가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2시간30분 정도다. 공부방~놀이터~공부방을 다니며 즐겁게 노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체험을 마치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 나오는 길 내내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 편견 없이 대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이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잘살고 못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는 것도 친구를 사귀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들을 바라보는 편견은 어른들의 눈 속에 있다. 비록 가정형편은 제각각이지만 아이들 모두 서로를 아끼고 소중한 그들의 꿈을 잘 키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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