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입력 2010-05-20 14:07:24

눈 맑은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가정폭력에 대한 준엄한 고발

이 책은 동구라는 눈 맑은 한 소년의 성장기이자 가정폭력에 대한 준엄한 고발이다. 어른으로 상징되는 집안의 권력자가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한 가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리솜씨 좋고 깔끔하고 자식들을 잘 챙기는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폭력. 그것은 주로 언어의 형태로 표현된다. 손자에게 '새끼'라는 욕설을 빼고 말하는 법이 없고 며느리를 향해 끔찍한 욕을 일상적으로 퍼붓는 할머니.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 앞에 속수무책인 무기력한 가장인 아버지.

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읽고, 이번에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도 그랬지만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할머니의 표독스러움은 진저리가 쳐질 정도이며, 우유부단한 아버지도 얄밉기만 하다. 어른들의 싸움과 미움 때문에 어린 동구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3학년이 되어도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 그리고 어른들의 싸움 틈바구니에서 사랑스럽고 영특한 동생 영주마저 희생되고 만다.

그 어리석은 싸움이, 그 일방적인 억압과 폭력이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폭력에 눌리어 싹이 꺾이고 있을 어린이들, 혹은 약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독자들이 이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은 아직도 이런 종류의 폭력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신이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동구는 속이 깊고 어진 소년이지만 어른들의 폭력에 짓눌려 그늘져 있다. 그런 동구를 꿰뚫어보신 박영은 선생님. 그는 얼마나 훌륭한 스승인가. 비슷한 처지에 있어도 박영은 선생님 같은 분을 못 만나고 시들어버리는 어린이들이 많으니 그런 면에서 동구는 행운아다. 그뿐인가, 동구에게는 주리 삼촌 같은 이웃과 '아름다운 정원'도 있다.

그런데 동구의 천사 같은 선생님은 1980년 광주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나온다. 작가는 아마도 폭력의 문제를 거시적으로 보고자 한 것 같다. 한가로운 나들이 장소이던 경복궁에 진주한 군인, 탱크로 상징되는 쿠데타, 광주의 피바람, 4학년 담임인 오 선생님의 이상한 광기에 이르기까지 폭력과 광기는 동구의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광기는 사회 곳곳에 넘쳐흐르는 광기의 일부다. 그토록 사랑하던 동생 영주와 박영은 선생님을 잃은 동구, 영주를 잃고 할머니의 악다구니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 가게 된 어머니,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소중한 딸을 잃고 아내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아버지, 그 누구도 광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혜와 선의 화신인 양, 집안 어른들의 폭력에 짓눌린 어린 동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던 박영은 선생님마저 더 큰 광기에 희생되고 만다.

유교적 전통과 오랜 군사통치하에서 살아온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폭력의 음습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학교와 군대는 폭력의 가장 왕성한 서식처이고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약자에 대한 폭력도 여전히 완강하다. 이 책을 사람들과 함께 읽으면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가정폭력의 실상들이 보고될지도 모른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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