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듯 말 듯…북한 땅 바로 눈 앞에
중국 단둥으로 가는 방법은 항공편과 배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시간이 넉넉한 여행자라면 배편도 한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인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매주 월'수'금요일 오후 5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단둥에 도착한다. 단둥에서는 매주 화'목'일요일 오후 3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인천에 도착한다. 요금은 왕복 정상가가 20만원 남짓이지만 비수기와 요일을 잘 선택하면 훨씬 싼 가격에 이용 할 수 있다.
항공편은 단둥으로 바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부산 김해공항이나 인천공항에서 선양으로 가서 차편을 이용해 단둥으로 가는 방법 등이 있다. 과거에는 대구에서 선양까지 주 2회 운항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선양에서 고속버스를 이용 할 경우 단둥까지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가격은 70위안 이다. 선양서 승합차를 빌릴 경우(운전수 포함) 왕복에 300~400위안 정도면 가능해 여러 명이 여행할 경우 편리하다.
단둥은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것 같다. 우리 일행은 모두 4명이라 압록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신시가지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방 5개, 화장실 3개인 60여평 되는 아파트를 하루 500위안에 계약했다. 중국을 여행할 때 일행이 5명 내외일 경우 호텔을 이용하는 것보다 아파트 민박을 이용하면 비용이 한결 저렴하다. 뿐만 아니라 하루 여행 일정을 끝내고 거실에 모여 앉아 간단하게 반주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좋고, 아침도 깔끔하게 한식으로 제공해 준다. 물론 무료다.
중국의 큰 도시를 대부분 여행해 본 필자는 여행하는 지역에 북한 식당이 있으면 꼭 들러서 식사를 한다. 남과 북이 현재는 분단의 상태이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고 문화가 같은 한민족 아닌가. 그리고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듯이 일하는 종업원 아가씨들은 기계 같은 말투가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대부분 늘씬한 키에 용모 또한 매우 뛰어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압록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 식당 청류관에 들렀다. 저녁이 아니라 점심과 저녁 사이의 어중간한 시간이라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요리와 들쭉술을 주문했는데 유난히 피부가 뽀얀 한 종업원 아가씨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여행 중 발병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필자는 마침 손님도 없고 조용한 시간이라 아가씨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좀처럼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근무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든 관광객이 진지한 표정으로 과분할 정도의 칭찬과 호의를 보이면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가씨 역시 나의 얄팍한 수에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름은 김옥희, 나이는 23세이고, 평양 외국어 대학을 졸업했으며, 중국어와 영어를 구사할 줄 알고, 악기도 3가지는 다룰 줄 안다고 했다. 그런데 3개월 후 본국으로 다시 들어가야 된다고 한다. 근무 규정상 외국에 나가면 1년을 기점으로 본국으로 들어갔다가 재교육 후 다시 나오든지 아니면 못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자신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식당 지배인(책임자)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근무 평가 점수를 낮게 받아 다시 나오기가 어려울 거라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눈가에 잔잔한 이슬이 맺히면서 괜한 이야기를 했다는 표정으로 원망하듯 힘없이 나를 쳐다봤다. 의도와 다르게 갑자기 무겁고 진지한 상황에서 내가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 대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무슨 말이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기에 "옥희씨는 똑똑하고 현명해서 아마 본국에 돌아가서도 다시 인정을 받고 나올 수 있을 겁니다"라며 어색한 변명 같은 위로를 해 주면서 한참이나 도닥거려 주었다.
밤이 되면 단둥은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또 다른 밤 문화를 꽃피우지만 압록강 건너 신의주는 불빛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 제2의 도시가 이 정도라면 국내 전력 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할 만하다.
다음날 느즈막이 일어나 조선족인 아주머니가 차려 준 정갈스런 밥상에 시원한 미역국으로 전날 밤 과음으로 뒤틀린 속을 풀고 압록강변 공원으로 갔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에는 두 개의 철교가 있는데 신의주와 연결되는 '중조우의교'와 관광지로 활용하는 '단교'다. 단교는 일본 총독부가 만주 진출을 위해 철도 사용을 목적으로 놓은 길이 944m, 너비 11m의 철교다. 원래는 신의주쪽에서 9번째, 중국쪽에서 4번째가 개폐식으로 돼 있어 90도 회전시키면 선박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1950년 미군의 폭격으로 단둥쪽 다리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신의주쪽 철교는 파괴되고 교각만 그대로 남아 지금도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조우의교는 현재 열차와 일반 차량들이 왕래하는 다리로, 북한에서 가장 많이 무역거래를 하는 노선이기도 하다. 북한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90% 이상이 단둥을 통해 들어가는데, 파이프 크기는 지름이 일반인 키보다 더 크다.
보트를 타고 압록강 유람 중 북한쪽으로 가깝게 접근하니 근처에 뛰노는 아이들 모습, 총을 들고 아무렇게나 모자를 돌려쓴 군인들,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은 어선들 위에서 뭔가 작업을 하는 남루한 복장의 어부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면에서 중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을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을 보면서 못내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단둥서 1시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호산장성이 있다. 한면은 산이고 나머지 삼면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 형세가 마치 누워 있는 호랑이 모습과 같다 하여 호산장성이라 불린다. 원래는 고구려 때 쌓은 '박진성'이란 산성인데, 1990년대에 중국에서 중국성 형태의 성곽으로 새로 축조한 후 산성을 이어 지금은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이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10여분 가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역을 만난다. 압록강 지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그만 도랑 같이 중간에 두세 개의 돌을 놓아 불과 2, 3m만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다. 숲이 우거져 있어 북한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조심스레 이야기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보트 투어를 할 때 미리 매점에서 빵이랑 과자를 사서 비닐봉지에 묶어 손이 닿을 듯한 지척에서 북한 땅에 던져 놓으면 한참 후 어디선가 주민들이 나타나 잽싸게 주워서 사라진다.
이번 단둥 여행은 청류관에서 일하는 종업원인 김옥희의 사연을 비롯해 간접적으로나마 북한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어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황병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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