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동인동 성광 자전거 수리점. 48년째 시간이 멈춰있다. 개업할 때 가게 모습 그대로다. 네모 반듯한 일본식 2층 건물에 나 있는 쇠창살에는 세월의 녹이 가득 묻어있다. 나무로 짜 맞춘 공구통에 담겨 있는 공구마다 닳고 닳아 윤이 난다. 파란색 가게 간판은 비 바람을 맞아 빛이 바랬다.
15㎡ 남짓한 가게안 장비도 변한 게 없다. 수동 공기 주입기며 찌그러진 양동이, 까맣게 손때가 묻은 망치와 드라이버…. 이 곳 서상태(66)씨는 강산이 5번 가까이 변할 동안 옛 방식 그대로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다. 처음 가게를 열었던 18세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이제는 주름이 성성한 60대 중반이 됐다.
17일 오후 2시쯤 찾은 자전거 수리점. 서씨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받아 놓은 채 자전거 뒷바퀴와 씨름하고 있었다. 타이어 안 공기 튜브를 빼낸 뒤 바람을 가득 넣고선 양동이에 빠뜨렸다. 자전거 펑크 원인을 찾기 위해서다. 이내 물속에서 방울방울 공기가 피어오른다."여기 구멍이 났네."본드를 튜브에 꼼꼼히 바른 뒤 고무 조각을 잘라 땜질을 마쳤다.
손님들은 서씨의 가게에서 과거로의 페달을 밟는다. 며칠 전 동생한테 중고 자전거를 얻었다는 김옥분(46·여)씨는 자전거 점검을 받으려고 수리점을 찾았다. 가장 먼저 왔지만 기다린 지 40분이 지났다. 계속해서 순번을 뒷손님에게 양보한 까닭이다."어릴적 앞마당에서 자전거를 손봐주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손님들은 온 순서에 상관없이 자전거를 고친다. 손님들이 서로 양보하고 서씨는 바쁜 순서대로 고쳐주기 때문이다. 지나는 행인들도 잠깐씩 걸음을 멈추고 정겹게 바라보곤 한다.
서씨의 자전거 수리는 정성이 반이다. 자동 공기주입기도 쓰지 않고 수동 펌프만을 고집한다."인력으로 끄는 물건인데 정으로 대해야지. 자동차 하고는 달라. 관절운동도 되고 얼마나 좋아."
손이 무뎌질까봐 작업 장갑은 아예 끼지를 않는다.
좋은 솜씨와 정감 넘치는 가게 풍경은 멀리서도 손님들을 찾아오게 만든다. 수성구 만촌동에서 왔다는 방문진(42)씨는 "어르신이 고치는 자전거는 딱 만져보면 바로 태가 난다"며 "수리 하시는 모습도 얼마나 정겨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사를 조이고 기름치고 브레이크를 손보고…, 서비스도 아낌이 없다.
서씨에게 자전거는 보릿고개 시절 배고픔을 이기게 했던 동력이었다.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하나는 공무원이고 다른 아이는 건축사로 일하고 있어."
서씨는 지금 7살인 손자가 탈 특별한 자전거를 제작중이다. 자전거와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조금 더 자라면 내가 만든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릴 거야." 봄 뙤약볕 아래 그을린 서씨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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