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경북을 걷다-<20> 경산 구룡마을을 찾아

입력 2010-05-11 07:26:00

운무 속 꿈결 같은 산책 끝에 다다른 하늘 아래 첫 동네

겨우내 눈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다 해 봤다.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동행 길을 코앞에 두고 발목까지 쌓인 눈 때문에 포기한 것도 세 차례나 된다. 봄이 오면 나아질 걸로 믿었는데 올해 봄 날씨는 고약하다 못해 신경질이 날 정도다.

경산시 용성면 매남4리, 흔히 구룡마을로 불리는 곳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뭔가 단단히 삐친 듯했다. 빗길을 걸을 각오를 하고 길을 나섰다. 경산시에서 919번 지방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자인을 지나 용성에 닿는다. 용성면사무소에서 서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보면 송림지가 나오고 갈림길에서 매남4리를 따라가면 된다. 첫 갈림길에서 석장사쪽으로 올라가도 되고, 1.5km쯤 더 가다가 청도군 운문면 봉하리와 구룡마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거의 180도 틀어서 콘크리트길을 따라가도 된다.

오늘 걸을 전체 구간은 7km. 갈림길 입구에 차를 세우고 길을 나선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린 탓에 길과 나무와 공기도 모두 촉촉하다. 길 오른편 산 아래 청도 봉하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안개에 싸인 풍경은 묘한 신비감을 더한다. 길 안내를 맡은 용성면사무소 김상열씨는 "포장도로가 생겨서 차들이 오가기 전만 해도 구룡마을 사람들은 비료 한 포대를 사려면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나서야 했다"며 "한때 숨어있는 오지마을로 곳곳에 소개됐지만 사람 손을 타면서 땅값도 오르고,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아쉬워했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이 미워졌다. 도대체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부아가 치밀었다. 길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호젓하기만 할 것 같던 산길은 인간이 남긴 더러운 흔적들로 짓밟히고 말았다. 길가 산비탈에 버려진 쓰레기는 양도 많을 뿐더러 버린 작태마저 교묘했다. 여름에 수풀이 우거지면 보이지 않겠지만 버린 쓰레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터. 김상열씨는 "워낙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청소하러 내려가기도 쉽지 않다"며 한숨 지었다.

##용왕 딸, 아홉 아들 키웠다는 전설

씁쓸한 마음을 안고 길을 재촉했다. 앞쪽으로 비구름이 내려앉아 모습을 감춘 구룡산(675m)이 보일 듯 말 듯 다가선다. 이곳에서 능선 줄기를 타기 시작하면 비슬지맥을 따라 경남 창녕까지 한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고 한다.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수백m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지경이니 먼 경치는 그저 짐작할 따름이다. 구룡산은 경산, 청도, 영천의 경계를 이루는 산.

비록 높지 않은 산이지만 재미난 전설이 서려있다. 옛날 동해 용왕에게 세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왕비가 죽고 계모를 맞았다. 옛 이야기에 착한 계모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이번 계모도 예상대로 구박이 심했다. 결국 용왕은 불쌍한 막내딸을 조선 땅에 보냈다. 막내는 처음에 금강산을 찾아갔지만 용왕의 동생이 이미 터를 잡고 있어서 남쪽 태백산 줄기를 따라 계속 내려오게 됐다.

그러던 중 정상이 평평하고 나무가 우거진 산을 발견했는데, 지금의 구룡산이다. 막내딸은 이곳에서 아홉 아들을 낳아 잘 길렀는데, 막내만 유독 말썽을 부렸다고 한다. 전설에는 아홉 아들이 용(龍)이라고 하는데, 당시 용의 모습으로 살았는지 아니면 본디 용인데 사람의 모습으로 살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튼 막내 용은 요즘으로 치면 문제아였던 모양이다.

참다 못한 어머니는 친정 아버지인 동해 용왕을 찾아가 벌해달라고 간청했고, 용왕은 막내딸을 어여삐 여겨 용궁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아홉 마리 용은 하늘로 승천해 생활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하지만 제 버릇 남 못주는 법. 말썽쟁이 막내 용은 하늘 생활도 지겨웠는지 다시 본래 살던 구룡산으로 막무가내로 내려오다가 용왕의 노여움을 사 그만 죽게 됐단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해서 구룡산이요, 그 용들이 승천한 곳의 정상에 있었다는 샘이 구룡정이고, 막내 용이 다시 내려오다가 죽은 곳이 남쪽에 있는 반룡산이다.

천주교 용성성당 구룡공소가 눈에 들어온다. 1815년 을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청송, 영양 등지에 흩어져 살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난오며 교우촌이 생겼고, 1921년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인 안세화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공소가 세워졌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종탑이 길 옆에 서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구룡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를 만날 수 있다. 언덕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을 따라 20여m쯤 오르다가 왼편으로 밭을 가로지르면 산악회 리본이 달린 등산로를 찾을 수 있다.

##봄꽃 지천에 울창한 송림 어우러져

여기서 20여분만 산을 오르면 정상을 만난다. 산 아래에는 진달래가 만발하고 복사꽃과 자두꽃이 지천으로 깔렸지만 아직 이곳에는 봄기운이 미치지 못했다. 정상을 덮고 있던 비구름은 잠시도 길을 터 줄 생각이 없나보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듯 산길을 올랐다. 구름인 듯 안개인 듯 짙게 드리워진 그속에서 비록 짧지만 꿈결같은 산책을 했다. 무채색 투성이로 겨울을 보낸 산은 옷을 갈아입을 채비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연두빛이 터져나오고, 붉은 기운을 머금은 진달래 꽃봉오리가 손끝만 대면 터질 듯 부풀어있다.

다시 산을 내려서 구룡마을로 향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곳이지만 들판이 제법 널찍하다. 김상열씨는 "이렇게 높은 곳에도 물이 끊이지 않아서 예전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지금은 아래에서 하도 물을 빼내서 그런지 물이 부족해졌다"며 "한때 지표수를 모아서 생활용수로 쓰기도 했는데 얼마 전 지하관정을 뚫어 물을 뽑고 있다"고 했다. 구룡마을 뒤편을 지키고 선 거대한 소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짐작게 한다. 마을 입구 표지석에는 '구룡'과 '고랭지 배추'라고 적혀 있다. 해발고도가 높다보니 가능한 농사다.

마을을 지나 석장사쪽으로 내려서는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작은 개 10여 마리가 각자 자기 집에 묶인 채 낯선 사람을 향해 맹렬히 짖어댔다. 산세는 깊고 인적은 드물다보니 고라니를 비롯한 야생동물도 많다. 밭마다 채소를 가꾸는데 피해가 극심하다고 했다. 궁여지책으로 개를 키우는데, 수확철이면 개를 풀어서 산짐승을 쫓는단다. 구룡산 일대는 울창한 송림으로 유명한 곳.

겨우내 워낙 눈이 많이 내린 탓에 휘어지고 부러진 소나무가 곳곳에 눈에 띈다. 쌓인 눈의 무게가 얼마나 컸으면 어른 다리만큼 굵은 소나무가 뚝뚝 부러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길을 따라 석장사를 지나면 다시 아스팔트 포장길을 만난다. 여기서 길을 따라 1.5km쯤 올라가면 앞서 출발점을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차를 타고 오가는 길. 하지만 여유롭게 걸으면 훨씬 예쁜 길임을 알 수 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경산시청 공보담당 김주원 053)810-6061,

경산시 용성면사무소 김상열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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