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부산 2곳 남은 곳도 운영난…비공식 환자 3만명 추정
"아버지와 밥도 같이 먹고 목욕도 하면서 하루를 함께 보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런 날이 올까요?"
반소매 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인 이석우(가명·27)씨의 모습은 여느 젊은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4년째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로 투병 중이다. 10대 중반 집을 뛰쳐나와 웨이터 생활을 하면서 콘돔을 쓰지 않은 채 잦은 성 접촉을 가졌던 것이 문제였다.
이씨는 "감염 사실 확인 후 처음 병원에 들렀을 때 직원들의 혐오스러워하던 눈빛을 아직 잊지 못한다"며 "이후 다섯달 동안 방 안에만 틀어박힌 채 세상과 거리를 두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달 전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가 마련한 '대구 에이즈 감염인 쉼터'에 둥지를 틀었다. 극도의 우울증 끝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 치료 후 이곳을 소개받았다.
꾸준히 상담을 받으며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갔다. 아직 이씨 가족은 그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모른다. 이씨는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발병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따금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두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씨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두달에 한번 정도 전화 연락을 하는 아버지다.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채 돈을 부쳐 달라고 손을 벌려야 하는 나 자신이 서글프다"며 "이번 어버이날 찾아뵙고 카네이션이라도 달아 드리고 싶은데…."
이씨처럼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인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004년 문을 연 대구 쉼터는 정부로부터 매년 7천500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지난해 2천500만원으로 지원금이 대폭 줄었다. 올해 지원금은 1천500만원. 보증금 2천만원, 월세 55만원에 일반 주택 한채(약 82㎡)를 얻어 감염인 6명이 쓰고 있지만 부식비와 공과금을 내기도 빠듯한 형편.
이 때문에 대구경북지회는 시민들을 상대로 성금 모금과 후원자 찾기에 나서고 있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대구 쉼터로 옮겨졌을 때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김진태(가명·53)씨는 현재 임대아파트를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지만 감염인 간병 자원 봉사를 할 정도로 체력을 회복한 데서 위안을 삼고 있다.
김씨는 "쉼터에 머물며 꾸준히 몸과 마음을 치료한 덕분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며 "이곳이 사라진다면 가족들마저 외면한 감염인들은 노숙자, 부랑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전국 HIV 감염인 수는 2000년 말 1천61명에서 지난해 말에는 6천917명으로 늘어났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집계되지 않은 이들까지 더하면 우리나라의 HIV 감염인은 최소 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쉼터에 대한 지원금을 계속 줄이면서 2007년 전국에 7개였던 쉼터는 현재 대구와 부산 두곳만 남았고, 이마저도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협회 대구경북지회 김지영 사무국장은 "HIV 감염인이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쉼터마저 문을 닫게 되면 그들이 이 사회에서 설 곳이 없다"며 "정부가 HIV 감염 예방뿐 아니라 HIV 감염인의 자활과 복지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후원 문의 053)741-5448.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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