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황혼] 웹버족 하한수·김호헌씨

입력 2010-05-06 11:58:11

"컴퓨터도 꾸준히 반복하면 능숙해져요"

하한수(69·대구 수성1가)·김호헌(63·대구 신매동)씨는 웹버족이다. 웹버(Webver)는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노인을 뜻하는 실버(Silver)의 합성어로 디지털문화를 즐기려는 정보화된 어르신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웹버족의 특징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서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블로그나 카페 운영은 물론 전자상거래, 사이버강의, 학위 취득 등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사회 참여도를 높인다.

하씨와 김씨는 하루 방문자가 500~1천명 정도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의 블로그가 인기 있는 이유는 독특한 성격 때문. 야후(kr.blog.yahoo.com/hahs5911)와 네이버(blog.naver.

com/hahs5911)에 있는 하씨의 블로그는 모두 동영상 자료로 꾸며져 있다. 김씨의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

/rlaghgjs)는 퀴즈에 관심이 있거나 퀴즈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만큼 정평이 나 있는 퀴즈 블로그다. 두 사람의 블로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떻게 하느냐. 나도 배우면 할 수 있느냐" 등의 문의를 심심찮게 받는다는 것. 가족들에게도 인기다. 손자들과 자식들에게 블로그는 자랑스런 할아버지, 아버지를 상징하는 존재다.

두 사람의 블로그를 방문하면 방대한 자료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예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들이 주인장이라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는다. 하씨의 블로그에는 신천'팔공산 등 대구의 자연과 국내'유럽'미주'호주'아시아 대륙을 두루 다니며 찍었던 여행자료 등이 담겨 있다. 김씨의 블로그에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방송된 퀴즈대회 자료가 거의 다 올라와 있다. 한마디로 퀴즈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하씨와 김씨가 블로그를 개설한 시기는 각각 2005년과 2006년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다 지난해 퇴직한 하씨는 캠코더로 건설현장을 찍는 것이 하나의 일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산행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 캠코더를 챙기는 버릇이 생겨 20여년 전부터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는 것. 남들과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개설한 블로그에는 하씨의 20여년 생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동영상 찍을 줄만 알았지 편집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방법은 몰랐습니다. 2005년에는 동영상 블로그 자체가 생소한 시절이어서 마땅히 배울 곳도 없었습니다. 이걸 해 보다 안 되면 저걸 해 보는 식으로 실패를 거듭하면서 독학으로 편집 기술을 익혔습니다. 1시간짜리 동영상 편집을 위해 밤을 새운 적도 많습니다."

조폐공사에 다니다 2006년 퇴직한 김씨는 어릴 때부터 퀴즈에 관심이 많아 라디오 퀴즈프로그램에 여러번 참가했다. 2005년에는 KBS1 '퀴즈 대한민국', 지난해는 KBS2 '1대 100'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각종 퀴즈대회 문제, 신문에 나오는 퀴즈 등을 모아 책을 펴내기도 했다.

"퀴즈블로그는 제 노력과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입니다. 퀴즈블로그가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씨는 2년여 전 귀여운 손자 사진을 찍어 주다 사진의 매력에 빠져 사진 블로그(blog.daum.net/rlaghgjs)도 개설했다.

두 사람은 하루 평균 3, 4시간 이상 블로그 관리에 투자한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못했을 겁니다. 하나 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 있어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들이 감사의 말을 전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김씨는 모 인터넷 카페에서 대가를 지불할테니 자신들의 카페에 퀴즈 자료를 올려 달라고 제안받은 적도 있었지만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유명 블로그 주인장이라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수성구청 정보화아카데미 수강 동기생이다. 이들은 올 초 정보화아카데미를 통해 컴퓨터 교육을 받았다. 블로그를 운영할 만큼 컴퓨터 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모두 어깨너머로 터득한 까닭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해 정보화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저희들이 해 온 것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어렵게 해 왔던지, 지름길 놔두고 빙 둘러가는 형국이었습니다. 컴퓨터를 배울수록 배움에 대한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습니다." 하씨와 김씨는 6월 5일 열리는 어르신정보화제전 대구지역 예선에도 나란히 출전해 그동안 배운 기량을 검증받을 예정이다.

두 사람은 "주변을 보면 아예 컴퓨터를 만지지 않으려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하지 않기 때문에 못 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뭐든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배우는 과정에서는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저장하는 습관만 들이면 누구나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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