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 주말 저녁, 시골 어머니 집의 전화기 너머로 조심스런 일본식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한국명 이조이, 일본명 에이코, 올해 84세인 일본에 계시는 이모님이시다. 4월 중순에 딸과 함께 서울에 가는데 여건이 허락하면 고향을 방문해 혈육들을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직감적으로 '마지막 여행을 계획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의 형제는 4남 3녀이다. 해방 전 히로시마의 원폭으로 남편을 잃은 외할머니는 당시 혼담이 오가던 열아홉살의 이모만 남겨 놓고 6남매를 데리고 귀국해 버렸다. 천지간에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암담한 처지였던 이모가 한국에 소식을 전해 온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흐른 후였다. 결혼 후 구레의 부둣가에서 시작한 간이식당이 자리를 잡아가고 조금 살 만해지자 자신의 근황을 한국에 전하고 외할머니를 초청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모는 친정 식구들을 돕기 시작하였다. 가난했던 외갓집은 알토란 같은 부잣집이 되었다. 이모는 형제 중에서 가장 못살았던 우리 어머니를 불러 선물을 주었는데 주로 이모가 패용하고 있던 금반지 등의 패물이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악착같이 모은 이모의 돈은 고향의 혈육들에게로 흘러들어가서 곤궁했던 각각의 가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모가 오셨다. 10년 만에 다시 뵌 이모는 한 보따리 약봉지를 안고 지팡이를 의지한 채 나타나셨고 예의 수줍은 미소로 일본식 한국말(?)을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셨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가빠하셨고 무릎의 통증으로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셨다. 3일간 우리집에서 원기를 회복한 이모는 혈육들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시고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셨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산소를 찾아 일본에서 준비해온 술잔을 올렸다. 빈 둥지처럼 남아 있는 고향집을 둘러보고 일일이 방문을 열어 보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마을 어귀의 넓은 들판을 지그시 바라보셨다. 그렇게 밀린 숙제 하듯 열흘 남짓의 짧은 여행을 마치셨다.
공항으로 향하는 이모의 얼굴은 오실 때와 다르게 너무나 평안해 보였다. 멀고 힘들었던 인생 여정의 끝을 앞에 두고 육신의 촛불이 꺼지기 전에 마지막 의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건네드린 히로시마행 항공권을 받으시고 수줍은 미소로 고맙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하셨다. 자녀들과 손자들은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부득이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을 독백처럼 하시고 애써 미안해 하셨다. 근현대사의 질곡들을 뒤로하고 그 모진 현실 속에서도 삶에 대한 열망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오늘 우리들 삶의 든든한 기반이 되셨던 한 재일교포 여인의 여행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최동욱<사업가>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