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예산을 통해 지역을 보자

입력 2010-05-04 11:08:47

"시범사업 이전에는 진료비 1천500원, 약품비 30%를 부담하였는데 시범사업 이후부터는 진료비 500원, 약품비에 3천 원의 보조를 받으니 일 년 단위로 계산해 보니까 총 2만 4천 원의 혜택을 받았어요. 이것을 계란값으로 환산해 보니까 30개들이 계란 한 판이 4천 원이니까 총 6판 180개의 혜택이랍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듣다가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2008년 말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단'에서 개최한 '건강한마당 건강생활실천 사례 발표'를 듣는 자리였다. 일흔이 넘은 어르신이 나오셔서 이 사업으로 혈압과 혈당이 정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혜택을 보았다는 얘기를 이렇게 알기 쉽게 말씀해 주셨다. 건강뿐만 아니라 이틀에 계란 하나를 선물 받았다는 말씀에 웃음과 고마움을 느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대구에서만 2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사업단에서 10만 명을 등록 관리했다고 한다. 단순히 진료비와 약품비를 보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등록된 분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어르신들의 생활습관을 개선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 1위는 심뇌혈관질환이지만 80%는 예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고혈압'당뇨병'비만 등의 고위험군 질환을 적절히 관리하면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사업은 전국 지자체들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보이는 사업이 올 8월 31일자로 종료된다고 한다. 가장 큰 원인은 재정상 예산 부족이라고 한다. 중앙정부의 시범사업을 담당 공무원이 어렵게 받아왔으나 지방 정부가 부담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논리다. 과연 예산은 부족한가?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지난해 3월에 대구 지역은 제2과학고 유치 경쟁으로 뜨거웠다. 결국 제2과학고는 경쟁구를 제치고 동구에 유치되었다. 당시 동구청은 유치의 조건으로 부지 매입비를 비롯해 학교 개설을 위해서만 200여억 원을 과학고에 지원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다른 구에선 지방 재정 상황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기초단체에서 200억 원이라는 금액을 신규 사업비로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년 80명의 학생이 입학할 예정이라는 이 학교에 동구 지역 학생이 들어갈 확률은 10%인 8명도 힘들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구의 재정이 소수의 학생들에게 집중되는 셈이다. 시민들의 환호 뒤에 이러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사업에 대해서는 없는 예산도 만들어 낼 것인가?

오늘도 출퇴근을 하는 많은 시민들은 짜증 섞인 소리를 내고 계실지 모른다. '무슨 도로 공사는 이렇게 자주 하는지?' '보도 블록은 왜 저렇게 자주 뒤집는지?' 그렇지 않아도 소소한 공사가 끊임없이 생기는 곳이 도시라는 공간인데 이제 4대강 사업까지 해서 그야말로 공사 천국이 되었다. 막히는 도로 위에서 핸들에 손을 올리고 짜증내는 사이 우리의 세금이 쓰이고 있다. 이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건강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고 업자들의 배만 불릴 수도 있다.

어느 사업이나 필요없는 사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이냐는 순위는 있다. 원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속적으로 다수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정책, 어르신과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정책, 이런 원칙이 필요하다.

예산은 지역을 보는 거울이라고 한다. 사업은 예산을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어디에 사용되는지 감시하고 참여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대구경북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방정부나 의회가 같은 정당 출신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이 말은 선거에 참여해서 투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 이후에 지속적인 감시와 참여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도 어느 지역의 경우 '아름다운 예산 신문'이 배포된다고 한다. 하루에 시민 한 사람이 세금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와 하루에 지출하는 예산 규모를 공무원 인건비, 도로 건설비, 공공시설 운영비, 노인 복지비, 학교 경비 보조금, 대중교통 지원금 등의 항목별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경북지역은 예산감시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투표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에 시민들이 함께 예산을 감시하고 참여해 보자.

안재홍 대구 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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