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 총장을 역임한 커넌트(James B. Conant)는 1963년 '미국의 교사 교육'이라는 논문에서 '체육은 기능 중심적인 교과이므로 학문적인 지식은 다루어지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여 체육 분야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는 체육은 교육적 기능 외에 독립된 학문 영역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에 자극을 받은 체육학자들은 즉각적으로 응전하여 체육학의 당위성을 제시하고 연구 영역을 본격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커넌트가 오히려 체육의 학문화 운동에 사회적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그후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체육학은 인간 움직임(human movement)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건강과 운동 선수의 경기력 향상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체육학의 하위 영역 중 선두 주자는 '운동생리학'이었다. 인간 움직임에 생물학 이론을 접목시켜 운동 시 발생하는 생리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이의 적용을 실용화한 것이다. 운동이 호흡순환계, 근골격계, 내분비계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운동생리학의 주요 과제들이다. 다음으로 등장한 영역은 '생체역학'으로서 물리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운동 시 생체조직에 적용된 기계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박세리의 골프 스윙, 박찬호의 투구, 김연아의 스핀 동작 등은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적용하여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체육학 연구는 인간 움직임이 심리적인 기제와 깊게 관련되어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인간의 몸과 정신은 이원화되어 있다는 시각이 지배하기도 하였으나 현대 과학은 이의 상호역동적인 관계에 유의하고 체육학 연구도 이러한 입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포츠 심리학'은 운동 시의 심리적 안정감과 자기효능감, 그리고 불안'우울증세 등을 연구영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체육학은 인간 움직임과 관련한 인간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게 되었다. 스포츠세계에도 인간상호 간의 충돌은 늘 상존해 있으며 이의 조화가 성공의 비결임을 간파하게 된 것이다. 이에 '스포츠사회학' 분야는 정치, 문화적인 문제까지 포함하여 연구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스포츠마케팅' 영역도 독자적인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다. 그야말로 체육학은 이제 어느 분야 못지않게 첨단과학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스포츠과학의 기세는 이제 '불가능은 없다'라는 전제 하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록들과 동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경기자에게는 성취감, 관람객에게는 현란한 볼거리를 선물하고 이에 건강과 수익 창출을 연출하는 수단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스포츠과학이야말로 가장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의 후원에 힘입은 스포츠 세계는 이제 모든 현상을 낙관적으로 수용해도 좋을 만큼 지상낙원이 되었는가?
현대 사회의 스포츠는 과학의 접목에 의한 눈부신 발전 못지않게 그에 의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음에 유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과학만능주의가 지나쳐 인간성 상실의 문제가 제기되고 이는 승리지상주의로 연결되어 일탈행위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자연 환경을 이용하는 스포츠의 확산에 의해 환경훼손도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의 책임이 전적으로 과학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성향의 과학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에 늘 한계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경험이나 실증만을 강조하고 논리적 사색보다는 감각적인 것에 의존하여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것에 소홀하게 되면 스포츠과학은 '지식의 학문'은 될지언정 '지혜의 학문'은 될 수 없다. 과학의 예리한 분석력은 반성적 자각과 비판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적 성찰력이 전제될 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스포츠 마당이 동물싸움장으로 전락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스포츠과학이 흐트러진 놀이마당의 첨병 역할로 만족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라고 하는 방법 못지않게 '왜'라고 하는 물음의 소중함을 스포츠과학은 깨달아야 한다. 스포츠과학에 철학이 가끔씩은 쓴 소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동규 영남대 체육학부 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