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性)/ 이성주 지음/효형출판 펴냄
인구는 어느 나라에서나 고민이었다. 근래 중국의 경우를 제외하면 인구는 대체로 부족해서 탈이었다.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약체로 취급받던 프로이센은 강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 증대에 힘썼다. 프리드리히 빌헤름 1세는 군징집자를 늘리기 위해 남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아내를 두 명 이상 두도록 했다. 더불어 10세 이상, 60세 이하 남자는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다. '남자의 의무'를 피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할 시간이 있으면 침대에 기어올라가서 아기를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2세는 '아버지의 법령에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면서 '부부끼리만 성관계를 해서 어느 천년에 인구를 늘리겠는가. 부부관계가 아닌 남녀가 자유롭게 성관계를 할 수 있도록 치정이니 성범죄에 관한 모든 법률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프리드리히 2세의 폭탄선언으로 프로이센 법정에서는 치정이나 강간 같은 어휘가 사라졌고, 근친상간이나 중혼도 허용됐다.
이 책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두 본성이다'(食色性也)라는 맹자의 '고자(告子) 상편'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식욕과 성욕은 인류 사회가 발전하는 원동력인데 식욕은 식문화라는 근사한 옷을 입은 반면 성욕은 음지로 숨어들어 도덕주의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문명 초기, 부끄럼과 탐욕을 모르던 시절에 성욕은 감출 것 없는 본능이자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옷을 입기 시작했고 옷을 입는 순간 인간은 부끄러움을 옷 속에 감추었고 탐욕을 호주머니 안에 감춘 채 몰래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을 감추고 갖고 싶은 것을 호주머니 안에 넣어서 남들이 볼 수 없도록 한 다음 홀로 독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성(性)은 인류 역사에 치명적인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음지에 가려져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질척한 밤거리를 배회하던 성을 대낮의 저잣거리로 끌고 나오겠다"는 말로 집필 의도를 밝히고 있다.
지은이는 '음지의 성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여러 시대, 여러 나라, 여러 문화권의 감춰진 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과 전쟁, 경제는 상호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권력이 사회적 약자에게 가하는 성적 억압과 폭력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정조대의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낙태는 권리인가 아닌가. 비아그라의 탄생은 남획으로 멸종 위기에 빠져 있던 순록과 바다표범에게 구세주 같은 약품이었다. 20세기 미국 흑인들은 매독 연구로 희생됐다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성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과 일본에서 성희롱이 민감한 까닭은 무엇인가. 화류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인가 등.
지은이는 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성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나름대로 확신에 찬 주장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가까운 동료들끼리 주고받을 만한 '이야기식 문체'로 속도감을 더한다. 303쪽, 1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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