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100번째 원숭이'를 기대하며

입력 2010-04-27 07:12:40

50여년 전. 일본의 미야자키현 동해안의 고지마(幸島)라는 무인도에서 재미있는 실험이 진행됐다. 야생원숭이 천국으로 유명한 이곳의 야생원숭이들을 과연 길들일 수 있느냐 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은 간단했다. 원숭이들에게 고구마를 주고 행동패턴을 관찰, 분석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에 강제(?)로 동원된 원숭이들은 처음에 고구마에 붙은 흙을 털어내고 먹는 등 원숭이다운 꾀를 냈다. 그러다 18개월짜리 암컷 원숭이가 우연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고구마를 강물에 씻어 먹는 것. 이 원숭이가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 다른 원숭이들도 이 행동을 따라하게 됐다. '고구마 씻어먹기'는 유행처럼 원숭이 사회에 번졌지만 모래를 털어먹는 것밖에 모르는 원숭이들이 훨씬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100마리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먹는 방법을 익혔을 때쯤 원숭이 사회에 큰 변화가 생겼다. 무인도에 있는 모든 원숭이들이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무인도인 이곳 원숭이와 전혀 접촉이 없었던 다른 지역 원숭이들도 이를 따라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 한마리 원숭이 행동이 공간을 초월해 원숭이 세계 전체를 변화시킨 것이다. 원숭이 사회에서 신기술이 정확하게 어떻게 전파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사회학에서 유명한 이론으로 정착된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지방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1명의 후보가 난립한 대구시교육감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공약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교장 공모제, 학교시설 개방, 남녀공학 폐지, 학력관리시스템, 문'이과 통합수업 등 교육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또 고질적인 교육계 비리를 없앨 수 있는 쇄신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학력저하와 교육계 비리 등으로 벼랑 끝에 선 대구교육'을 살리고자 많은 예비후보들이 너도나도 100번째 원숭이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유권자들은 '과연 교육감 후보들은 다르구나, 어떻게 매일 공약을 쏟아낼 수 있을까' 하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러나 이들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면 '과연?'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많은 공약들이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굳이 교육계 인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교육감 선거에서 많은 공약들이 나오고 있지만 재원마련에 대한 대책이 없거나 비현실적인 공약들이 남발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교육감 선거를 취재하면서 교육감 캠프의 한 관계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는 교육감 정책들이 언론을 통해 쏟아지면서 '하루에 한개씩 공약을 만들어 내라'는 예비후보의 지시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을 참고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진지한 고민이나 사전검토 없이 '일단 튀고 보자'식 공약을 앞다퉈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제목만 바뀐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변화를 위한 정책이나 공약이 교육계에 적용되고 추진동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공약이 가지는 진정성이 담겨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수요자들을 설득시키고 교육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후보들이 내건 공약들이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수많은 입시정책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진정한 100번째 원숭이가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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