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멘탈이다] 증오

입력 2010-04-26 07:07:17

'수정의 밤'으로 일컬어지는 1938년 11월 9일 밤에 나치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제3제국 내의 모든 유대교 회당을 파괴하고 91명을 살해했으며, 2만5천여명을 집단 수용소로 이송했다. 뒤이어 7년간 벌어지는, 인류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인 홀로코스트의 서막이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 하의 게르만이 유대인들에게 보인 집단적인 증오였다.

2000년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칸델의 가족도 당시 빈에 살고 있었고, 그날 밤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 속에는 그의 아버지도 있었다. 그때 에릭의 나이는 아홉 살이었다.

우리는 누구를 향한 미움이 극도에 달하면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 즉 원한이 하늘에 사무친다고 한다.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수를 스스로 갚지 못하면 자식이 대신 갚아주기를 원하기도 했다. 복수의 대물림이다.

그래서 킹 목사 같은 이들이 용서와 사랑을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임스 볼드윈은 달리 찾았다. 사람들이 증오에 집착하는 이유는, 증오가 사라지고 나면 고통과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신경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 남을 미워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미르 제키와 죤 폴 로마야는 기능적 핵자기공명영상이라는 신경과학의 방법으로 증오를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들의 얼굴과 애증의 감정이 없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뇌 안의 변화를 관찰했다.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동안에는 내측 전두엽회, 우측 기저신경절의 피각, 양측 전운동 피질, 전두엽 최전방, 양쪽 내측 도(島)에서 활성이 증가됐다. 이는 미움을 경험할 때 관여하는 특정 부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우측 도, 우측 전운동 피질, 우내측 전두엽회의 활성이 증가하는 것은 미움의 정도와 관련이 있었다.

애증은 팔짱을 끼고 함께하는 양극의 감정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동안에 우리의 뇌에서는 지금 열거한 부위에 활성이 감소할까, 아니면 상반되는 작용을 하는 다른 부위의 활성이 증가해서 미움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활성을 상쇄할까?

다시 말하면 사랑의 신경회로는 미움의 신경회로와는 별개의 것일까, 아니면 양자는 동일 회로의 활동 방향이 반대일까?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반유대주의와 같은 특정 집단에 대한 집단적인 증오를 경험할 때에 사람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규명해보겠다는 것도 세미르 제키의 희망이다.

박종한<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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