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를 상징하는 휘장들을 자세히 보면 뱀이 지팡이를 감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것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라고 부른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 800년경에 살았다고 전해지고 히포크라테스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선서 속에도 의술의 신으로 등장한다. 사실 인간이었던 아스클레피오스가 의술의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그리스 신화에 그가 신으로 격상된 부분을 옮겨보면 이렇다. 아폴론 신과 인간 코로니스의 아들로 태어난 아스클레피오스는 산속에 은둔한 현자 케이론 밑에서 자라면서 의술과 약 처방술을 배웠다. 의술의 신 아폴론의 아들인 그가 의술을 펼치자 소문은 곧 온 그리스로 퍼졌고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왔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유명해지자 자만심이 생겨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자신의 모든 지식과 기술을 발휘하여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냈다. 그러자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넘은 그에게 격노한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번개를 내리쳐 죽였다. 자연의 질서를 깬 죄의 대가였다.
여기까지 보면 신화의 과장된 부분을 빼더라도 아스클레피오스가 대단한 의사였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지는 않았다 치더라도 적어도 죽어가는 사람은 여럿 살려냈으리라. 과연 '신의 손'이라는 칭호가 어울리고 의료를 뜻하는 수많은 휘장에 그의 지팡이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된다면 그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는 곳에 가서 내 직업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드디어 지난달 그 기회가 왔다. 학회 때문에 그리스를 가게 된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병원 터였던 그의 신전은 수도 아테네 남서쪽의 도시 에피다우로스에 있었다. 지금은 돌무더기 사이로 잡초가 우거진 그의 병원 터를 둘러보니 '신의 손'으로 열심히 환자를 돌보는 아스클레피오스가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 안내인이 내게 속삭였다. "아스클레피오스처럼 되고 싶습니까?"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감히 어떻게……." 안내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명의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그리고는 놀라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병원에는 힘센 문지기가 여럿 있어서 위중한 환자는 문 앞에서 모두 돌려보냈어요. 그리고 병원 안에서 치료 받던 환자도 죽을 때가 되면 밖으로 내쫓았답니다. 그래서 아스클레피오스의 병원에서는 죽는 환자도 없었고 위중한 환자도 없었지요." 안내인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튼 애써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찾아간 것이 허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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