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우울증을 앓았거나 사람과 교류하는 일이 적었거나, 사랑이라는 걸 꽤나 오래 하지 않았을 때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살다 보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굳이 누구에게 맞출 필요도 없고 내 행동의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내 할 일은 내가 찾아서 하면 그뿐이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할 일도, 누군가의 불편한 부탁을 받을 필요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혼자만의 세상에 너무 오래 길들여지면 소통의 방법을 잊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공감능력도 떨어진다. 공감한다는 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엔 쉽지 않은 전제가 깔린다. 너와 나는 기본적으로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취향도 다르다. 삶의 기준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그러니 서로의 마음을 읽고 그걸 받아들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나는 사람의 공감 능력은 기본적으로 '부딪힘'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더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소통'과 '교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교감은 서로의 세계가 부딪히지 않고는 일어나기가 힘들다. 내가 만들어온 세계와 상대방이 살아온 세계가 부딪히면서 때론 깨지고 때론 연결된다.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이해되고, 도저히 인정되지 않던 부분이 마음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소통을 시도하고 우린 서로의 삶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러니 진정한 공감은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가 갖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의 원인이 소통의 부재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이 교류해야 하고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딪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너와 나의 세계가 부딪히는 일은 너와 나의 세계가 비로소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통과 교감을 시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서로의 삶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건강한 대화를 더 많이 하는 것, 다르다는 사실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전제가 되는 것. 그러다 보면 그렇게 다른 너와 나도 결국은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가슴 기쁘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참 많이 다르지만, 참 많이 닮아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문주<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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