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타워즈'를 따라간 여행기록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LP 한 장을 발견한다.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운드 트랙이다. 먼지를 털어내고 턴테이블에 올리는 순간 오래된 고향의 기억이 떠오른다. 가난한 비탈길을 한참 걸어내려 가면 늘 분주한 버스 종점이 있고 그 한편에 극장이 있었다.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동시 상영관은 거의 일 년 내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늘 우리들에게 짜릿한 놀이터가 되곤 했다. 굳이 문화교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몰래 숨어들어가거나 표를 끊고 들어가 낡은 필름 속에서 사뭇 슬프고 진지한 얼굴을 한 배우들의 연기에 도취되어 눈물을 짓곤 했었다. 거센 개발 바람에 마지막까지 버티던 극장이 허물어지고 은행이 들어서던 날, 우리는 극장의 작은 규모에 놀라기도 했지만 어쩌면 어둠은 늘 사람을 작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다락방의 벽을 도배한 신문의 영화 광고는 때로는 아득한 꿈이었고 또 가끔은 가난한 일상의 탈출구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빛바랜 추억이 되고 말았다.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는 작가가 영화의 자취를 따라 여행한 스물여섯 번의 여행 중 열두 번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이미 『필름 속을 걷다』라는 책을 통해서 탁월한 글 솜씨로 섬세한 감성을 표현한 바 있는 이동진은 자신의 말처럼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담배냄새로 가득한 극장에서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자갈뿐인 바닷가, 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들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잊고 다시 공장으로 나가던 누이들과 어머니들, 그것은 그야말로 이었다. 작가는 를 좇아 여행하면서 시간의 부스러기를 말한다. "세상을 이룬 모래는 잔바람에도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이제 어둠이 사막을 완전히 삼킨 후에도 모래는 잠들지 않고 오래도록 수군댈 것이다." 1977년 세상에 나온 이래 2005년에야 비로소 막을 내린 시리즈가 튀니지(Tunisia)의 사막 한가운데서 촬영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과거를 거슬러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떠남을 꿈꾸는 사람에겐 너무도 간절하게 다가온다. 비록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아니 구태여 볼 필요도 없이 책을 읽다 보면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그랬고 작가가 그랬듯이 어렴풋이 꿈을 꾸게 된다. 세상의 중심(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룰루(에어즈락), 늘 어둡고 차갑게만 느껴지던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 건축가 가우디(Antonio Gaudiy Cornet)의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Barcelona)가 그다지 멀리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 영화라는 매개가 작용한 것인지 모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노르웨이의 여가수 카리 브렘네스(Kari Bremnes)의 '어 러버 인 베를린'(A Lover In Berlin)을 듣는다. 외롭고 쓸쓸한, 그래서 더 차가운 아픔 같은 것이 묻어나는 그녀의 노래는 아직도 봄을 보지 못한 안타까움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의 터널 내내 봄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이 영화 풍경은 따뜻함이다.
여행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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