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직장 동료의 결혼식을 다녀오던 중 차 안 라디오에서 '건어물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골드미스' '된장녀' '초식남' 등 각종 신조어들을 많이 듣긴 했지만, '건어물녀'는 생소한 단어였다. 뜻인즉 이랬다. 일본 만화 '호타루의 빛'에서 유래한 말로, 직장에서는 매우 세련되고 능력있는 여성이지만 일이 끝나면 미팅이나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와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머리를 대충 묶고 맥주와 오징어 등 건어물을 즐겨 먹는 여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즉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 '연애 세포'가 말라 건어물처럼 된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런 건어물녀는 남성다움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남자, 자신의 취미 활동에는 적극적이지만 연애에는 소극적인 '초식남'과 곧잘 비교되고 있다고 한다. 두 신조어 모두 이성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석의 S극과 N극처럼 이성 간의 관심(끌어당김)은 '자연의 이치' 같은 것인데 이 감정에 무뎌질 수 있다는 건 어떤 것에도 우리의 감정이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일에는 깜짝 놀라지도 않고 어떤 일을 당해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것, 무뎌진다는 것. 건어물녀, 초식남을 떠올리면서 사람과 일에 대해 점점 더 무뎌지는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에게 같이 맞서려다가도 저 사람은 원래 저러니까라며 무심해지고 업무상의 불합리한 점을 발견하면서도 어느새 그 불합리함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보게 된다.
하지만 절대 무뎌져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천안함 사고, 헬기 추락, 지하철 참사…, 크고 참혹한 사고를 많이 보고 듣다가 어느 순간 그 사건들의 심각성에 무뎌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무참한 성폭행과 대중을 상대로 한 범죄를 접하면서 어느 순간 또 '나쁜놈'이라는 한마디로 무심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연예인들의 결별, 이혼 소식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으나 어느 순간 '연예인들은 다 그렇지 뭐'라는 이야기로 끝나버리듯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유명인들의 잦은 소식에 생명의 존엄함에 대해 소원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대할 것이 아무리 없어 보일지라도 그래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한 사람의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감성'이 메마르고 마침내 '인간 건어물'이 되는 일은 차마 없기를 바라본다.
박정숙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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