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봉이 김선달이 경북을 본다면…

입력 2010-04-16 11:07:47

만약 우리에게 밤이 없다면?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며 지내는 경향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기이며 그 다음이 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을 사먹는다고 했을 때 얼마나 신기하게 생각했었던가? 하지만 이젠 물을 사먹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밤 또한 이런 쪽에 속한다. 언제나 시간이 되면 찾아오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맞이한다. 만약 밤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삭막했을 것이다. 낮 시간 내내 긴장하며 세상사에 시달려온 심신을 풀어주는 밤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밤 문화(?)는 너무 향락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은가? 우리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공기, 물에 비견될 만큼 중요한 밤을 너무 허비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개인이건 기관이건 밤을 활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또 밤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달이다. 보름달 아래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는 등 우리 민족의 많은 이야깃거리가 녹아있고, 신라의 달밤 등 달을 노래한 것도 많다. 어둠은 사람의 정서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묘약이다.

특히 경북은 수려한 자연 경관과 문화 유산으로 많은 내방객이 오고 있다. 이들에게 얼마 전까지 밤은 그냥 쉬는 시간이었다. 좋은 말로 쉬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면 "딱히 야간에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북 각 지자체별로 밤과 달, 별을 팔기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타 도에 비하면 앞서고 있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1994년 9월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경주의 '달빛 신라 역사기행'은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낮 시간에는 유적 답사, 야간에는 백등을 들고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도 빌며, 달밤에는 유적지 현장에서 국악 공연, 강강술래 등을 하면서 신라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매년 6천여명 이상이 참가하니 이제는 확고히 자리를 잡은 듯하다.

달빛 신라 역사기행이 전국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관 주도가 아닌 민간단체에서 먼저 시작하면서 자생력을 갖춘 상태에서 경상북도나 경주시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풍력단지와 바다 절경을 걷는 영덕이나 김천, 문경, 성주, 영천, 영주 등 경북 8개 지역에서 각 지역별 특징을 살린 다양한 야간 활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하니 문화적 상상력과 아이디어만으로 어느 지역보다도 밤이 아름다운 경북이 된 것이다. 특히 경주는 우리나라 대표적 유적지답게 안압지를 비롯한 동부 유적지에 야간 조명을 만들었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관광객이나 시민 모두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2011년에는 보문호수에서 2천석의 호반 관람석이 조성된 가운데 환상적인 분수 쇼까지 연출된다고 하니 밤이 낮보다 더 화려한 변신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안동이나 경주를 중심으로 고택 등을 활용한 다양한 야간 프로그램이 개발돼 체류형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각 지자체별로 특색 있는 연출이 필요하다. 달빛 기행처럼 풍부한 문화자원과 관광객의 체험 욕구를 결합해 신라 천년의 문화를 보다 생동감 있게 연출하거나 똑같은 문화재일지라도 전문가의 깊이 있는 해설과 친절한 안내로 관광객을 매료시켜야 한다. 크고 현대적인 관광 인프라도 중요하겠지만 사람의 심성을 자극할 수 있는 밤을 활용한,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현대인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이제 4월부터 매주 주말마다 경주로부터 시작되어 경북으로,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번져가고 있는 밤의 재발견에 경북의 밤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이 와서 본다면 뭐라고 할까? 물을 파는 것보다 밤을 팔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마 "한 수 배웠습니다"라고 하지 않을까.

진병길 신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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