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군사기밀

입력 2010-04-07 10:32:11

2차 대전 때 연합국 정보분석가들은 1943년 11월 나치가 초강력 무기를 개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아가 이들은 나치가 그해 5월에 실험을 끝냈지만 실전 배치는 1944년 1월 중순에서 4월 중순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중에 밝혀진 그 무기의 정체는 V1로켓이었고 이들의 예측은 대부분 들어맞았다. 특히 실전 배치가 늦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너무나 정확했다. 나치가 실험까지 마친 비밀무기를 곧바로 실전에 투입하지 못한 것은 그해 8월 연합군의 폭격으로 생산공장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던 것이다.

연합국이 이렇게 엄청난 기밀을 입수할 수 있게 해준 것은 평범한 단파 라디오였다. 1943년 여름 나치는 초강력 무기를 개발했다는 선전방송을 내보냈다. 즉시 조사에 들어간 연합군은 항공 촬영을 통해 나치가 프랑스 북부에 비밀무기 공장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정말로 초강력 무기가 존재하는지, 무기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연합국 정보분석가들은 지루하고 따분한 선전방송 청취를 통해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갔다. 그들은 나치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자랑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선전상 괴벨스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때까지 독일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가 비밀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그 가능성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말콤 글래드웰)

이 같은 사실(史實)은 군사기밀이 선전방송 청취 같은 극히 평범한 수단으로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천안호 침몰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군사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방장관은 한'미 정보 당국이 북한 잠수함 기지를 하루 두세 차례 위성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해군 초계함의 성능과 구조, 취약점은 벌써 드러났다. 이제는 교신록까지 공개 압박을 받고 있다. 교신은 암호로 이뤄진다. 교신록 공개는 우리 군의 암호책을 통째로 북한에 넘겨주는 것과 같다. 정확한 사고 경위 설명도 좋지만 언론을 통해 민감한 군사정보를 국민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이것이 안보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정보를 공개한 정부인가 정보 공개를 요구한 여론인가.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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