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으로 맺은 아름다운 인연 이정두·강주영씨

입력 2010-04-06 10:20:12

"당신은 내 콩팥이 되고, 난 당신의 눈이 되어… "

영남대병원 사회복지팀에 매달 20만원씩 기탁하는 한 부부가 있다. 부부는 홀몸 노인을 위해 보일러를 무료로 바꿔주고 쌀 나누기, 비데 설치 등 형편이 닿는 대로 나누며 살고 있다. 2008년 10월부터 시작된 나눔의 손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크게 남보다 부유할 것도 없지만 나눌수록 넉넉해지는 세상의 진리를 일찌감치 깨우친 이들이다.

1996년 6월, 당시 23세 꽃다운 나이의 강주영씨는 영남대병원에서 신장 하나를 떼어주는 수술을 받았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오빠를 위해서였다. 결혼도 안 한 아가씨여서 부모님조차 수술을 반대했다. 하지만 강씨는 몰래 조직검사까지 받은 뒤 기꺼이 오빠에게 자신의 장기를 나눠주었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1997년 1월 겉보기에 멀쩡한 건장한 청년 이정두씨가 영남대병원에 입원했다. 감기인줄 알았는데 쉽게 피곤하고 몸이 나른해지는 증상은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며 곧바로 수술을 권했다. 대동맥판막치환술로 심장에 인공판막을 넣는 큰 수술이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했다.

서로 전혀 모르던 두 남녀는 1998년 봄에 만났다. 처음 인사를 나누던 날을 강씨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막상 결혼을 생각하니 수술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제법 큰 흉터가 남았거든요. 처음 만난 날 바로 오빠에게 신장을 나눠준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했고, 하루가 멀다하고 데이트를 했다. 강씨가 정두씨의 심장수술을 알게 된 것은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오빠 심장이 유난히 두근거리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수술 이야기를 하더군요."

사실 정두씨가 미리 털어놓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심장 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석 달쯤 지났을까.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갑자기 왼쪽 눈이 안보이기 시작한 것. 급기야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거리감이 없어서 산을 내려오다 굴러떨어지기도 했고, 좌절감에 눈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하지만 천성이 긍정적이라 이것마저 이겨냈다.

이야기를 듣고난 주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콩팥이 하나 없고, 당신은 눈이 하나 안보이네요. 사람에게 콩팥도 두 개, 눈도 2개를 준 이유를 알겠어요."라고. 만남을 시작한 뒤 정두씨는 보일러 대리점을 열었고, 주영씨는 그곳에서 일을 도왔다. 첫 만남 후 결혼할 때까지 2년 동안 딱 하루를 쉬었다. 새벽녘에 일어나 잠시 숨 돌릴 새도 없이 부지런을 떨어야 했고 밤 11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우리 둘 다 가정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고, 결혼만큼은 우리가 돈을 모아서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돌아오더군요. 다행히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결혼식도 올렸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1, 2학년 두 딸을 둔 부부. 정두씨는 귀뚜라미홈시스 대구전시장 대표로, 주영씨는 영남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결혼할 때부터 부부는 '언젠가 기반이 잡히면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자'고 약속했다. "좋은 일은 나눌수록 2배, 3배로 불어나더군요.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우리 부부도 없었을 겁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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