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프런티어] 대구가톨릭대병원 외과 최동락 교수

입력 2010-04-05 08:18:29

간이식 수술 180례, 성공률 90% 넘어 '한강 이남 최고'

가뜩이나 외과가 푸대접받는 요즘 '간담췌장 및 간 이식'은 3D 중에 3D로 꼽히는 기피 분야다. 생명과 직결된 부위인 만큼 위험성도 높아서 자칫 잘못하면 환자의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명의식이 없이는 버티기 힘든 분야이다.

◆간 이식 불모지를 개척하다

최 교수가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오기 전까지 대구는 간 이식 분야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레지던트를 마치고 3년간 전임의와 촉탁의로 재직하며 간 이식술을 배운 그는 대구에서 간 이식의 새 장을 열었다. 간에 문제만 생기면 서울로 올라갔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히려 최 교수가 수술하는 간 이식 환자의 절반가량은 경남, 경기, 강원 등 타지역에서 오는 환자들이다.

그만한 명성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라면 소명의식도 뚜렷할 터.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난 그는 "할 얘기도 별로 없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떤 의사가 되고프다는 목표 의식도 없었다. 졸업하면 국가고시 치러서 의사가 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다. 틈만 나면 등산을 다니는 바람에 본과 1학년때 유급도 당해봤다.

졸업 후 경북 청송군 부남면에 공중보건의로 가면서 그의 인생은 조금씩 달라졌다. "보건소에 거미줄만 잔뜩 쳐 있고, 하루 환자가 5명도 안 되더군요." 환자가 없으니 의사는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고, 의사가 없으니 환자의 발길은 더욱 멀어졌다.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오기가 생기더군요. 제대로 된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직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했고, 이웃 마을도 마다않고 왕진을 다니며 휴가도 없이 3년을 보냈다. 마칠 즈음엔 보건소 수입으로 새 단장까지 마치고, 환자 수는 평일 30여명, 장날 90여명까지 끌어올렸다.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죽을 환자 살려내는 것이 의사 사명

하지만 주변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레지던트로 받아줄 곳이 없었던 것. 일 년 동안 딱히 전공도 없이 일반 의사로 보내야 했다. "서울아산병원 레지던트에 지원했죠. 시험 경쟁률이 3대 1이었습니다. 나중에 붙고 보니 레지던트 4년차까지 다 합쳐도 제가 나이가 가장 많더군요." 몸도 마음도 말로 다 못할 고생을 했다.

그때 만난 이가 바로 자신의 스승인 이승규 교수다. 지금은 간 이식 분야의 최고로 꼽히는 의사.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간 이식은 초기 단계였다. 한 해 전국적으로 간 이식은 20례 정도에 불과했다. 1988년 서울대병원에서 첫 간 이식 수술이 성공했지만 한동안 주춤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이승규 교수를 중심으로 간 이식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라면 도전하지 않았겠죠. 죽을 환자를 살려낸다는 것이 바로 의사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레지던트를 마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한 첫 해, 일 년 365일 중 집에 들어간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간 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면역력이 극히 떨어져서 상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이 때문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해도 결코 방심할 수 없다. 실제 간 이식 환자가 숨지는 원인 중 거의 대부분이 수술 후 감염 때문이다.

◆환자 숨질 때엔 자괴감 밀려와

2003년 드디어 최 교수는 자신의 집도 아래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첫 간 이식 수술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때 실패했더라면 지금처럼 지역에서 간 이식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을 겁니다." 현재 최 교수의 수술 성공률은 90% 이상. 그 결과 환자들은 수술 후 살아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가 됐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때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연말까지 6개월가량 사망 환자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 초에 수술 환자 한분이 숨졌어요. 정말 자괴감이 밀려들더군요." C형 간염으로 간경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환자였다.

어려운 수술임을 알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을 대했고,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들도 숱하게 살려냈지만 이런 일을 겪을 때면 후회가 밀려듭니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보면 '이 환자만 살려놓고 그만 둬야지'하고 결심하다가 다른 환자를 보면 다시 메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외과의사의 숙명이죠."

그렇다고 해도 최 교수는 자타가 공인할 만큼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는 간 이식 수술 전문가다. 남의 간 조직을 떼어내 이식하다보니 면역억제제는 필수. 환자의 면역력은 지극히 떨어져 작은 감염원조차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최 교수는 환자 상태만 봐도 어떤 면역제를 어떻게 써야 효과적일지 직감적으로 정확히 알아낸다. "서울아산병원 시절부터 수백명의 간 이식 환자를 봤는데 그런 노하우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책에도 없고,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 환자를 위하는 '못된 의사'

수술뿐 아니라 수술 후 환자 상태 때문에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는 딱히 취미도 없고 잡기에도 능하지 않다. 아침 6시3 0분에 일어나서 7시 30분이면 회진을 돌고 환자를 대하기 시작한다. 수술이 있는 날이면 밤 9~10시나 돼야 끝난다. 주말에도 그는 환자 때문에 병원에 나온다. 그래도 환자의 생명을 살려냈다는 보람이 크지 않느냐는 물음에 최 교수는 "100명을 살려도 1명이 숨지면, 그때까지 느낀 보람은 온데간데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환자들 사이에서 '못된 의사'로 소문 나 있다. 친절하지도 않고 툭하면 화를 내고 나무란다. "환자를 고객이랍시고 그저 모셔두는 것은 오히려 환자를 죽이는 길입니다. 몸이 아파서 그저 누워만 있고 싶은 환자에게 좋은 말로 운동하고 열심히 먹으라고 하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일부러라도 화난 척 연기를 할 필요가 있죠." 어떤 의사가 되고싶으냐는 물음에 그는 "기왕이면 우리나라 최고, 나아가 세계 최고의 간 이식 수술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성공한 의사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서울로 가는 환자들이 대구 의사를 믿고, 우리 의사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울 때 그때야 비로소 성공한 겁니다. 수술은 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팀워크가 중요합니다. 언젠가 우리 수술팀이 최고가 될 겁니다." 지역보다 서울에서 오히려 더 유명한 그는 아직 욕심이 채워지지 않았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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