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하향식 공천 이젠 그만"
6·2지방선거를 앞둔 23일 현재 불법 선거운동으로 적발된 선거사범은 329명. 이 가운데 7명이 구속됐다. 불법 선거 유형의 대부분은 직·간접으로 돈과 연관돼 있다. 선거운동 기간 불법으로 뿌린 돈은 재임 때 반드시 회수하게 마련이다. 이른바 '본전 뽑기'다. 지방 행정을 탁하게 하는 불법 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공천단계부터 눈여겨봐야 한다. 최근의 공천 활동상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돈 공천은 어떤 식으로
16대 국회가 끝날 무렵,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인 A국회의원의 집으로 등산복을 입고 커다란 배낭을 멘 한 남자가 찾아왔다. 인터폰으로 살펴보니 등산객처럼 보인 인물은 경북의 한 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잘 알고 지낸 인사였다. 그는 A 의원에게 "배낭에 수억원이 있고 꼭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순간 A 의원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돈을 받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다 '공천이 확정되면 받겠다'며 달래 돌려보냈다. 돈 가방을 메고 찾아온 그 인사는 공천에서 탈락했다.
A 의원의 사례를 보더라도 과거 선거에서 돈으로 공천을 받으려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민선 3기 지방선거까지 돈 공천과 관련한 이야기 중 일부에서 지역구 지방의원은 5천만~1억원, 비례대표 광역·기초의원은 1억~2억원 정도라는 말들이 많았다. 단체장은 더 큰 금액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경북지역의 한 선거구에서는 지방의원 후보가 공천 헌금을 위해 돈을 구하러 다니는 광경이 주변에 목격돼 물의가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그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법적인 제재를 받았다.
특히 각 정당들은 특별당비라는 것을 만들어 후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돈을 걷기도 했다. 공천과는 무관하다 했지만 특별당비를 낸 인사들에 대해 당 기여도 등의 점수가 후했던 것은 상식으로 통했다.
◆돈 공천은 옛말(?)
이제는 돈 공천이 판을 치는 시대가 아니다. 정치제도와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공천제를 기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모든 정당의 당원협의회는 사당화돼 있다"며 완전 상향식 공천제 도입을 주장했다.
선거에 앞서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는 것도 돈 공천을 근간으로 한 일방적인 상명하달식의 사천(私薦)을 방지하는 차원이다. 현역의원뿐만 아니라 일반 당원에다 외부인사까지 공심위에 포함된다. 그래서 '공천 헌금'이 난무할 때보다 자기 사람을 심는 사천이 많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국회의원은 공천권자
일방적 하향식 공천은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의 속내를 공천에 그대로 관철시키는 장치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실현 여부를 떠나 이를 막아보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좌지우지하는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국회의원 입맛대로 공천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은 결국 국회의원의 선거를 돕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며 정치학자들까지 비판하는 제도다. 여기에 고무된 듯 일부 기초·광역단체장도 정당 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며 뭉치고 있고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한국청년유권자연맹 등도 이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다.
현 제도의 틀 안에서 보완하자는 온건론도 적지 않다. '후보가 여럿이면 무조건 경선을 하자'는 주장이다. 일단 한나라당 중앙당 공심위는 '경선 우선'이라는 방침을 정했다. 다른 정당도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각에선 '공천심사위원의 공천실명제를 실시하자'는 의견도 나오는데 공심위에서 어떤 위원이 후보를 선정했는지 이유를 밝히고 추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연대책임을 묻자는 것이 요지이다.
◆공천의 갖가지 유형
대외적인 형식에 있어서는 상향식 공천이 대세로 자리 잡은 가운데 의원들마다 좋아하는 유형은 서로 다르다. 이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자율방임형'. 이철우 의원(김천)은 지역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6·2지방선거 '공직자후보자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공심위에 앞서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듣겠다는 뜻이다.
'중립형'도 있다. 이명규 의원(대구 북갑)은 "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공천 무개입이다. 약속대로 대구 북구는 경선 지역으로 선포됐다.
'중앙당 위임형'도 있다. 대부분 의원이 이런 유형으로 중앙당 당헌·당규나 공심위 방침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밖에 지역의 한 의원은 "구의원, 시의원 후보까지 경선할 필요가 있나? 낭비다"며 공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뜻을 분명히 했다. 솔직히 마지막 안이 의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이 의원들 마음대로 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아 점점 의원들의 입김이 줄어드는 추세다.
◆국회의원도 공천 따러 다닌다
국회의원이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주기만 하진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는 후보자들이 아닌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얻으려고 로비를 벌이는 기현상(?)이 일고 있다. 이유는 비례대표 광역의원 때문이다. 대구와 경북 각각 2명씩 안정권인 광역의원 비례대표를 자신의 지역구 인사를 심기 위해 일부 의원들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경북의 경우 의원들 간 경쟁이 치열하다. 그동안 인구 분포 때문에 포항, 구미 출신이 주를 이뤘던 전례를 들어 다른 지역구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구미·포항을 제외한 지역구 의원들은 "그동안 구미·포항은 비례대표 덕을 많이 봤으니 이번 한번은 양보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해당 지역구 의원들은 양보할 뜻이 없다.
대구도 마찬가지. 자신의 지역구민이 광역의회에 한명이라도 더 진출할 경우 예산 확보와 시정에 영향을 더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자신들의 지역구 인사를 비례대표로 내정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비례대표 광역의원이 선거 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연임에도 도움되는 점을 노리는 부분도 없지 않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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