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앞능선은 모두 운문산…가지산도 하나로 여겼다
운문분맥 북편 청도서는 가지산~운문산~호거산 흐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가지산은 어디서도 보기 어렵다. 그 바로 아래 운문사 동네서도 마찬가지다. 운문산·호거산은 운문호 아래 방지리·대천리나 이웃 동곡리 등에서만 겨우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윤곽이 너무 희미해 현장을 특별히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게 그것인줄 알아채기 불가능하다.
분맥서 갈라져 나온 지릉들이 길게 내달려 산의 몸체와 마을 사이를 매우 멀리 벌려 놓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산 밖 마을 중 분맥에 가장 가까운 운문면 소재지 대천리서 가지산은 14㎞, 운문산은 12㎞나 된다. 금천면 소재지 동곡리서는 13㎞ 및 10.5㎞다. 운문사 입구의 산 속 신원리서도 무려 8.5㎞나 떨어져 있다. 직선거리로 친 게 이렇다. 뿐만 아니라 그 지릉들은 기세가 너무 높아 본체가 안 보이게 가려버리기까지 한다. 거기다 입구의 운문사가 선을 그으니 심리적 거리감까지 덧붙는다.
이런 여건서 형성된 청도 쪽 시각은 어땠을까.
1530년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 조 경우 운문분맥에선 오직 운문산만 언급한다. "군의 동쪽 96리에 있다"는 단 한마디다. 당시 군 치소(治所·군청)가 있던 지금의 화양읍 옛 중심거리서 100리 거리라는 뜻이다. 마음속에서까지 그만큼 멀다는 얘기처럼도 들린다. 1670년대에 씌어진 청도읍지 '오산지'(鰲山志)의 '산천형세' 항목 또한 그 산줄기서는 유일하게 운문산만 설명한다. 이 둘은 청도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그보다 더 권위 있거나 신뢰도 높은 기록은 없다. 그런 두 기록이 모두 운문산만 강조했다. 그럼 가지산은 어디로 갔을까?
놀랍게도 조선시대 청도 쪽 기록에 '가지산'은 없다. 청도를 그린 다양한 고지도들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석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뚜렷이 가리켜 보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언양현 조 기술과 다르다. '가지산'이라고 바로 박은 '영남지도' 언양현 그림과 배치된다. 이 구간 표시가 다소 혼란스러운 대동여지도조차 운문산과 가지산을 분명하게 구분해 보인 점과도 상치된다.
왜 그랬을까? 가지산이라고 불리는 그 산덩이의 존재 자체를 청도 쪽 서술자들이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거긴 청도 땅이 아닌 줄 알고 서술 대상에서 빼 버린 것일까?
오산지 서술을 보면 그런 게 아님이 명백하다. "단석산 지맥이 경주 산내를 지나 가파르게 높아져 운문산이 된다"고 했다. 거기에 점차 높아져 솟아오르는 산줄기와 산덩이가 있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산의 동쪽 골짜기는 언양현의 산수가 되고 서쪽 골짜기는 우리 고을의 산수가 된다"고 했다. 지금 가지산이라 부르는 바로 그 산덩이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걸 '석남산' '가지산' 하지 않고 '운문산'이라 한 것만 차이다.
그럼 지금의 운문산은 뭐라고 구분했을까? 오산지 다음 서술은 "산줄기는 굽이굽이 절경을 이루며 밀양까지 이른다"고 이어진다. 앞서 솟은 운문산이 뒤에 솟은 운문산까지 굽이굽이 이어간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가지산과 운문산을 모두 묶어 하나의 운문산으로 봤다는 얘기다.
이런 시각은 그러나 청도 사람이나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것도 아닌 듯하다. 조선조 초에 씌어진 '고려사'가 "남적(南賊)이 봉기했다, 극심한 건 운문의 김사미와 초전(草田) 효심이다"고 기록한 게 주목할 대상이다. 거기서 고려 때 민란의 발생지로 적시된 '운문'은 대개 운문산의 줄임말로 이해된다. 당시를 기준으로 볼 때 달리 비정할 지명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입장에서야 '운문면'이 얼른 연상될지 모르나 그건 김사미 봉기(1193년) 700년 뒤인 1900년대에야 생긴 지명이다.
그 김사미 부대는 경상도 일대를 장악할 정도로 세가 컸다. 그를 이어 부대를 이끈 '패좌' 세력은 10년이나 운문산에서 버텼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운문산에는 거기 어울릴 큰 산채가 들어설만한 공간이 없다. 그 큰 민란 근거지가 겨우 주능선 3㎞짜리 지금의 운문산으로 국한됐다고 하기는 궁색하다. '고려사'에서도 운문산을 훨씬 넓은 범위로 봤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억산·구만산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사미와 연대해서 공동작전을 폈던 초전 효심의 근거지가 그 구간 너머 밀양 산내면 최하단의 용전리이기도 하다.
두 산을 하나로 보는 시각은 무의식중에 지금도 그대로 이어짐을 느낄 때가 있다. 그곳 휴양림 이름도 한 사례다. 그 자리는 명백하게 가지산 영역이다. 하지만 거기 붙은 명칭은 '운문산휴양림'이다. 어느 날 일부러 찾아들어가 모르는 척하고 "여기가 어느 산이요?" 했더니, 산림청 직원들이 황당해 했다. 서로 반응을 살피더니 "운문산 아닌가? 상원산인가? 가지산인가?"했다. 운문산임을 의심해 본 적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청도나 그 밖에서나, 왜 이렇게 가지산과 운문산을 하나로 묶어 이해했고 또 이해할까?
아까 살폈듯, 무엇보다 민가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일 터이다. 만약 가까이 있으면 분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각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을 터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는, '운문사 잎산은 모두 운문산'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경우 '운문산'이 특정 산덩이가 아니라 구체성 떨어지는 하나의 광범한 '권역' 명칭으로 굳어질 소지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운문산이란 이름이 그 절 이름서 유래했다면 이건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인식틀이다.
이렇게 될 경우 남는 시비 거리는 단 하나, 그럼 가지산이 운문사 앞산이고 운문사가 가지산 자락에 있는 절이냐 하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은데 '운문'이란 이름을 따다가 그 산에 붙였다면 그건 넌센스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석남사가 있다고 해서 석남산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운문사가 있으면 당연히 운문산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생활권에서 단절성이 높던 그 옛날, 언양은 석남산이라 하고 청도는 운문산이라고 서로 다르게 부른다 한들 이상해 할 일도 아닐 터이다.
그럼 운문사는 가지산 자락에 있을까, 운문산 기슭에 있을까?
어리둥절할 사람이 더러 있겠지만, 거긴 가지산 자락이다. 생각도 못한 일이라 할지 몰라도 분명 운문산 기슭이 아니다. 가지산 귀바위봉에서 북으로 내려서는 '지룡능선' 기슭이 운문사 자리다. 절뿐 아니라 운문사계곡 입구 신원리 마을 대부분의 터전 역시 가지산 자락이다.
운문사 담장 서편으로는 운문천이 흐른다. 만약 운문사나 마을이 그걸 건너 자리 잡았더라면 그때는 운문산 자락이 될까? 천만의 말씀, 거기마저 운문산 자락이 아니다. 거긴 호거산 아랫자락이다. 운문산은 거기까지 발조차 내려뻗지 못한다. 가지산 줄기와 호거산 줄기 사이에 끼여 있기 때문이다. 운문사 산내 시설 중 운문산 자락에 자리한 것으로는 '문수선원'이 유일하다.
그러면 운문사 앞능선도 운문산 것이 아니란 말일까?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그 60% 이상은 가지산 능선이다. 이것도 예상 밖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점들로 본다면, 청도로서야 차라리 가지산을 운문산이라 부르는 게 더 합당할 수 있다.
다만 주목해 둘 것은, 가지산이나 운문산이나 그 어느 것도 혼자서는 '운문사 앞산'의 역할을 다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운문사가 엄청나게 큰 계곡의 복판에 앉아 그 앞능선을 다 차지한 게 사안의 발단이다. 그 계곡 앞담에 해당하는 주능선 길이가 무려 10.2㎞(평면거리 기준)나 된다. 그 중 6.2㎞는 가지산 것이다. 가지산 전체 주능선 8.5㎞ 중 귀바위봉~아랫재 구간이 그 역할에 합류한다. 나머지 중 3㎞는 운문산, 1㎞는 호거산 주능선이다. 가지산 대부분에다 운문산 전체와 호거산 주능선 대부분이 합세하고서야 '운문사 앞산' 능선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운문천 서편이 호거산 영역인 이유가 이해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가지산-운문산-호거산을 모두 '운문산' 하나로 합쳐 부르는 게 현장 사정과 더 부합할 수도 있다. 그런 뒤 가지산은 운문산 가지봉 혹은 시례봉, 그 남사면 백운산은 운문산 백운봉, 운문산은 운문산 함안봉이라고 구분하면 된다. 그러면 산줄기 남과 북의 시각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터이다.
거대한 하나의 산 덩어리로 펼쳐져야 할 진짜 운문산은 사라지고 중치 정도에 불과한 여러 산들로 쪼개져 버린 것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쳐 하나로 했으면 14㎞나 됐을 운문산 주능선 길이가 3㎞로 짧아져 버리니 너무 초라하다.
그에 비하면 대구권 팔공산은 하나의 산이면서도 주능선이 20㎞나 된다. 지리산은 성삼재~천왕봉 구간만도 28㎞에 이른다. 만약 '운문산' '가지산' 나누고 '상운산' '백운산'까지 쪼개듯 해 버렸으면, 그 산들도 산산조각 나고 말았을 테다.
가지산 이름에 쐐기를 박는 정상석을 세운 주체는 울산산악회가 아니라 청도산악회다. 애향운동의 하나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돌에 '운문산'이라고 새겼더라면 옛 어른들 식견과 더 부합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봐야 이미 달걀로 바위치기였을까.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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