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線, 새로운 色 중견의 힘
대구의 중견 디자이너들이 한국패션산업연구원(한국패션센터) 안 멀티숍 '매스 패션 애비뉴(MASS FASHION avenue)'에 둥지를 틀었다. 기존 카페 공간을 리모델링해 패션멀티숍으로 꾸민 것.
공개 모집 결과 입점한 디자이너는 '엠퍼시스'의 정창식, 'G·G'의 김미영, '에-셀'의 김미경, '카키 바이 남은영'의 남은영 등 네 명이다.
디자이너는 늘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는 곧 디자이너의 스트레스이자 활력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들은 "옷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절대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로드숍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출산과 육아 때문에 5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이 멀티숍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제2의 전성기를 꿈꾸기도 한다.
이들 네 명의 디자이너들은 돌아가며 매장을 지킨다. 3월에 문을 열어 아직 홍보가 되지 않은 탓에 찾는 손님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젊은 디자이너들의 옷에 대한 열정은 그 어느 곳보다 뜨겁다. 운이 좋으면 디자이너와 함께 옷에 대한 수다도 떨 수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와 함께 '빗살무늬'도 입점했다.
패션도시라 자부하는 대구, 그 중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디자이너 네 명의 속내를 들어본다. 053)380-3335.
◆정창식(엠퍼시스)
디자이너 정창식(50)씨의 디자인은 평범해 보이는 듯 하지만 부분적으로 과감한 절개와 디자인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위한 컨템퍼러리 룩을 선보여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디자이너 정씨는 서울 등지에서 하던 활동을 접고 이 곳 매장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크지 않은 매장이지만 총 60여벌의 옷을 진열해두고 있다.
그는 요즘 패션계를 두고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광고기획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도 유명 디자이너로 데뷔하는 요즘이다.
대구를 '패션의 도시'라고 하지만 의외로 활동 중인 디자이너 수는 많지 않다. 대구의 1세대 디자이너들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지만 그 이후 흐름이 끊어지고 중견 디자이너 30~40명이 전부다. 오랫동안 옷을 디자인하고 있는 정씨도 윗 세대와 아랫 세대를 이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선택되지 않은 소재는 죽은 소재죠. 패션과 섬유가 함께 가야 비로소 진정한 패션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가격대는 재킷 30만원대, 한 벌 50만~60만원대.
◆김미영(G·G)
디자이너 김미영(41)씨는 지역에서 드문 드레스 디자이너다. 프랑스에서 드레스를 공부해 주로 웨딩 드레스, 이브닝 드레스 등을 디자인한다.
"웨딩드레스이지만 섹시하면서 귀족적인 분위기를 내려고 해요. 적당히 노출하면서도 품위를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죠."
레이스, 비즈 하나하나 수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벌 만드는 데에 15~20일씩 걸린다. 원가도 80만원에서 300만원대로 천차만별. 대부분 여성들이 무조건 수입 드레스를 선호하지만 꼭 수입산이라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서양 여자들은 키가 크기 때문에 키가 작은 우리나라 사람이 입으면 허리가 너무 길어보일 수 있어요. 비즈나 레이스는 프랑스, 이태리산이 좋지만 실크는 국산도 그 못지 않죠. 무조건 외국산이라 해서 좋은 건 아니에요."
똑같은 흰색 바탕에 매번 다른 디자인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드레스 디자이너는 어깨와 목 디자인의 변화에 신경을 쓴다.
요즘은 반짝이는 비즈 보다는 실크만으로 된 깨끗하고 단아한 디자인이 인기다. 유명 배우들이 이같은 드레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이유로 여자들이 꿈꾸는 공주풍 드레스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하고 단정한 예복도 함께 판매 중이다.
◆ 남은영(카키 바이 남은영)
8년째 '로시스포제'란 상호로 로드숍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최근 상호를 '카키 바이 남은영'으로 바꿨다. 디자이너 남은영(39)씨는 지난달 열린 대구컬렉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20대의 젊은 감성부터 50대까지 겨냥하고 있어, 젊은 옷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
"옷이 알려져서 판매되기까지 3년은 고생했어요. 경제력이 약한 젊은 세대를 겨냥하다 보니 더욱 어려웠죠. 하지만 이젠 입소문이 나고 단골도 많아져 50대까지 고객 폭이 넓어졌어요."
남씨는 한 가지 품목으로 크기에 따라 세 벌만 만들고 끝낸다. 그래서 희소성이 크다. 바느질이나 소재에서도 우위를 차지한다고 확신한다. "디자이너의 옷이 기성복 라인보다 미싱 수공비가 서너 배는 들어요. 옷 소재도 차이가 많이 나죠." 디자이너 역시 10년 전 만들었던 자신의 옷을 아직 입고 있다. 그만큼 꼼꼼하게 공을 들인다는 뜻이다.
다행히 요즘은 '남들 다 입는 옷은 싫다'는 패션 트렌드 세터들이 많아지고 있다. 오뜨꾸뛰르 숍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에겐 희소식이다. 미니 원피스는 45만원대, 정장 슈트 50만~55만원대.
◆ 김미경(에-셀)
"남성복도 매력이 커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느낌이 좋네요."
디자이너 경력 20년차인 김미경(41)씨가 여성복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전면적인 변신을 꾀했다.
최근 대구 디자이너 가운데 김씨처럼 여성복에서 남성복으로 관심을 옮기는 디자이너들이 여럿 보인다. 남성복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데다 여성 고객처럼 까다롭지 않아 디자이너에게 이점이 있다. 디자이너에게 맞추는 남성복은 기성복과 어떻게 다를까.
"셔츠의 경우 기성복은 박스 형태로 나오지만 저는 라인을 다 넣어요. 배가 나온 분들도 허리 라인이 있는 옷을 좋아하죠. 더 날씬해 보이는 효과도 있고요."
체격에 꼭 맞춰 입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셔츠의 단추까지도 직접 고를 수 있다. 한번 맞춤 정장의 맛에 길들인 사람은 기성복을 입지 않는다. 원단은 모두 최고급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김씨의 원칙이다. 임대료가 저렴한 만큼 싼 값에 질 높은 옷을 입을 수 있다.
현재 영남대, 경북대 상주캠퍼스 등에서 의류학과 수업도 병행하고 있는 김씨는 사실 여성복, 아동복까지도 디자인을 겸하고 있다.
"이 곳에서 남성복에 대한 시장성을 검토해보고 몇 년 후 본격적으로 남성복 시장에 뛰어들 계획입니다." 남성 정장 30만~35만원대, 셔츠 6만~7만원, 면바지 10만~13만원대.
◆ 빗살무늬
디지털 대구염색공단내 전통문양 디자인 원단을 디지털 날염방식으로 생산하는 ㈜빗살무늬도 매스 패션 애브뉴에 입점했다. 전통 문양을 디지털 방식으로 프린트한 남녀 넥타이와 실크 스카프, 극세사 타월 등 아트상품을 전시, 판매한다. 넥타이와 스카프는 7만~12만원대, 파우치는 2만~5만원대.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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