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艦長

입력 2010-03-31 10:46:54

태평양전쟁의 분수령이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항공모함이 침몰을 피할 수 없게 됐을 때 일본과 미국 지휘관들은 매우 상반된 행동을 보였다. 기함(旗艦) 아카기(赤城)에서 일본 함대를 지휘했던 나구모 주이치 제독은 퇴함을 택했다. 그렇게 한 것은 아카기의 피격 당시 4척의 항모 중 1척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군과 붙어볼 만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지휘관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제일 먼저 미군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지휘부 장교 전원과 함께 폭사한 가가(加賀) 함장 오카다 지사쿠를 제외한 모든 함장이 부하들에게 퇴함을 명령한 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가장 먼저 침몰한 소류(蒼龍)의 함장 야나기모토 류사쿠, 제일 나중에 침몰한 히류(飛龍)의 야마구치 다몬 소장과 함장 가쿠 도메오가 그랬다. 모두가 비장한 모습이었지만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후계자로 꼽힐 만큼 유능했던 야마구치 소장의 마지막은 특히 비장했다. 부하들의 간곡한 이함(離艦) 권유를 뿌리치고 불타는 함교에 남은 그는 부관이 "배 안의 안전한 곳에 돈이 아직 남아있다"고 보고하자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대로 놔두게. 저승에서 푸짐하게 식사를 하려면 돈이 필요할 게야."('살육과 문명' 빅터 데이비스 핸슨) 부하의 설득에 굴복하긴 했지만 아카기 함장 아오키 타이지로 역시 퇴함을 거부하고 닻에 몸을 묶고 배와 운명을 같이하려 했다.

미군 지휘관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기함 요크타운이 피격되자 미국 함대 지휘관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신속하게 이함했다. 배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분전한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도 결국 배를 버렸다. 미국과 일본 함장들은 이렇게 다른 선택을 했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모두 부하들을 먼저 퇴함시키고 자신은 마지막까지 배에 남았다는 점이다.

천안함 침몰 당시 함장을 포함한 장교는 모두 살았지만 실종자 46명 전원이 부사관과 사병이라는 사실을 놓고 말들이 많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원일 함장은 승조원과 부상자를 모두 내린 뒤 마지막에 구명정으로 배에서 내렸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함장 책임론'을 들먹이는 것은 금물이다. 함장과 장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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