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성별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최근 강한 여자를 '육식계(肉食系) 여자', 유약한 남성을 '초식계 남자'라 부른다. 초식계 남자는 연애와 결혼에 소극적인 부드러운 신세대 남성을 가리킨다. 육식계 여자는 초식계 남자를 힘차게 결혼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러한 성 역할의 전환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남존여비 시대가 종지부를 찍고 성별이 애매해짐에 따라 새로운 남녀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문제시되고 있다.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일까. 2차 대전 이전 일본에서 '여자다움'이란 부드럽고 순종적이며 주위를 잘 배려하는 것이었다. 전후에 집에 묶여 있던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하고 가정과 밖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현대 사회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여성들에게 강인함과 행동력을 요구하고 있다. 청초한 일본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야마토 나데시코'(패랭이꽃)라는 단어가 없어진 지는 오래다.
나는 한국에서 남자 동료에게 "일본 여성은 훨씬 여성스럽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일본 여성상은 조용히 남자를 떠받드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현관에서 무릎 꿇고 "이제 돌아오십니까"라고 인사하며 귀가하는 남편을 맞는 모습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장면은 오래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이다. 우리 집에서 귀가하는 아버지를 맞이하는 것은 슬리퍼뿐이다. 맞벌이가 늘어난 최근에는 남편이 식사 준비를 하고 귀가하는 아내를 맞이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도 맞벌이 가정이 늘고 있으나, 여성의 부담은 일본보다 훨씬 무거워 보인다. 한국의 맞벌이는 사회와 가정에서 여성의 이중 부담을 강요하는 것 같다. 가정에서는 아내,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 사회에서는 직업인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는 말을 한국에서 듣고 놀랐다. 특히 윗세대에는 아직 이러한 유교적 사상이 짙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가정과 사회적 역할의 절충점을 한국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자가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인 '슈퍼우먼 증후군'은 미국이 발상지이지만, 지금은 모든 나라에 공통된 현상이다. 남성이 집안일을 분담하는 데 대한 주위의 시선이 따가운 한국에서 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여성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여성스러움은 '귀여움' '애교' '부드러움'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전부 남성을 의식한 것이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남성의 바람과 이상일 것이다. 오래전에 한국인 여자 감독이 여자다움은 "씩씩하고 정당하고 자신감 있게 사는 것"이라고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여자다움은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배후에는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 갔을 당시에 한국인 여성에 대해 이해 못 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한국 여성은 좋아하는 사람이 접근을 해와도 처음에는 안 그런 척하거나 데이트 시간에 일부러 늦게 나갔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여자가 아무리 강한 척해봐야 결혼만 하면 조용하게 집안 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것 같았다. 남녀는 다 같이 결혼 후 여성의 지위가 내려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는 결혼 전에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높여 두려고 하고, 이것을 알고 있는 남자들은 일부러 참아 주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떠올린 대답이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상과 여성상도 바뀐다. 남녀평등을 지향하면 성별 정체성이 무너지고, 전통을 존중하면 현대 사회와의 부조화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긴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편하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과도기에 있다.
요코야마 유카
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연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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