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에는 우물이 자주 등장한다.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蘿井), 알영부인의 탄생에 얽힌 알영정(閼英井), 김유신이 출정길에 마셨다던 재매정(財買井), 왕건이 마셨다는 왕정(王井), 조선시대 왕들이 사용하던 마니(摩尼), 유리(琉璃), 옥정(玉井) 등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비단 역사적 인물들과 관련된 우물뿐만 아니라 일반 고옥들이나 오래된 동네 어귀 어디에서든 우물 하나씩은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물은 우리 조상들의 삶과 그 맥을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지하수를 떠나 있었던 시간은 수천년 역사 속에서 채 100년에 지나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일본인들의 주도하에 지표수 위주의 광역적인 상수도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지하수는 세인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돌보지 않으면서 어느샌가 오염되고 양도 적어 가치 없는 수자원으로 전락했다.
최근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물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관리가 요구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표수에 한정된 취수원 일원화의 불합리성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2009년 봄 태백의 가뭄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2009년 봄 가뭄은 태백시로부터 약 20㎞ 떨어진 주요 취수원지인 광동댐 물 공급량이 오랜 가뭄으로 현저하게 줄어듦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 이 기간,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시 지하에는 가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있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투수성이 좋기로 꼽히는 석회암 대수층을 가진 태백시는 황지연못, 검룡소, 구문소 등 지하수와 관련된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상수원 공급을 위한 체계적인 지하수 관리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태백시는 예정된 가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반 상황이 시사하는 것은 비상시 '물주권'의 중요성이다. 수자원에 대한 의사결정권 내지 적극적인 상황 통제력을 지니지 못한 것은 대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구의 상수원 취수지는 낙동강, 운문댐, 가창댐, 공산댐으로 이들은 가깝게는 10㎞, 멀게는 30㎞ 이상의 거리에 위치한다. 이들 상수원을 통해 하루 최대 164만t의 물이 공급되며 이는 대구시민 전체가 하루 이용하는 물의 2배에 이르러 일단 수량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충분한 양의 물을 확보하고도 대구는 물 때문에 빚어지는 크고 작은 몸살을 유독 자주 앓는다. 대구는 그동안 낙동강 페놀사건, 수돗물 1, 4 다이옥산 검출 사건, 수돗물 퍼클로레이트 검출 사건 등으로 시민들이 고통을 받았으며 수돗물의 수질에 관한 한 전국 광역시 중 가장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구의 지하수는 유럽 국가들의 지하수 수질에 비하여 뛰어나며 그 양 역시 유럽 국가들 못지않다. 유럽 환경청 자료와 우리나라 환경부 자료를 종합해 보면 유럽 선진국의 지하수 수질기준 초과율은 몇 개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10%를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나 대구의 지하수 수질기준 부적합률은 0.7%로 이는 국내 평균인 5.6%를 훨씬 밑도는 수치이다. 금번 대구시에서 추진하는 동네우물 개발을 위한 사전조사 분석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여준다. 선정된 35개소 지하수의 대부분에서는 심미적인 영향물질을 제외한 오염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심미적인 영향물질 역시 우리나라만 엄격한 기준으로 통제하는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물질로 세계보건기구 및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이들을 오염물질로 취급하지 않는다. 과연 물맛까지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 것일까?
21세기에 들어 중요한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물은 순환형 자원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 가장 현명한 자원관리는 효율적인 개발과 이용이다. 지하수는 지표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수질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지표수를 고도로 정수하여 마시고 그냥 마셔도 될 지하수를 허드렛물로 이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지하수를 상수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선진국형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치수'(治水) 문제로 한바탕 떠들썩하다. 치수에 앞서 진정한 '워터와이즈'(waterwise)를 한번 생각해 봄 직하다.
박은규 경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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