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지켜온 사명, 이렇게 끝내나…

입력 2010-03-19 09:54:39

폐원 앞둔 대구적십자병원 직원들의 눈물

대구적십자병원의 폐원 소식에 18일 적십자병원에서 20여년 근무한 한 간호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간호사는 오갈 곳 없는 의료약자나 외국인 근로자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대구적십자병원의 폐원 소식에 18일 적십자병원에서 20여년 근무한 한 간호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간호사는 오갈 곳 없는 의료약자나 외국인 근로자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아무리 애써도 눈물샘이 터졌다. 이삿짐을 싸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과 앞날을 계획하다 흘린 눈물과 같은 눈물이다.

반평생을 함께 한 이곳으로 출근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정말 떠나느냐"는 환자들의 불안한 눈동자를 안심시키며 "우린 여기 계속 있을 것"이라던 자신감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18일 대구 적십자병원에서 만난 간호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21년간 청춘을 몸바친 병원이 결국 폐원하기 때문이다. 폐원을 최종 결정한 대한적십자사가 중앙 인사위원회를 통해 대구 적십자병원 직원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진 이날, 마지막까지 병원을 지키고 있던 동료 직원들 역시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오후 "본사에서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곳 직원들은 불투명한 자신들의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간간이 간부들이 불꺼진 병원 복도를 기웃거리며 순회할 뿐 직원들 상당수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적십자 대구병원이 업무를 중단했지만 의무기록지를 복사하러 오는 환자들에 대한 배려는 마지막까지 지켜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원들의 불안감은 이내 드러났다. "폐원인지 이전인지, 어쨌든 서울, 인천, 경남 통영, 경남 거창, 경북 상주에 있는 적십자 병원으로 인사가 나겠지만, 먼 곳에 인사가 나면 어떡하나"는 얘기가 오갔다.

병원을 지키고 있는 직원들은 간호, 의료기사, 영양사, 일반직 등 53명. 60년 역사의 대구병원을 떠난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는 듯 직원들의 허탈한 표정은 모두 같았다.

"구조조정, 임금 반납, 성과급 반납도 모두 견뎠는데…"라는 아쉬움도 새어나왔다. 특히 직원들은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적십자 대구병원의 발전적 계획을 모색하겠다는 발언과 지난해부터 내부 리모델링을 했던 것을 거론하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더 큰 걱정은 인사 이후다. 다른 지역으로 가서 일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80%가 여성인데다 이중 대다수가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여서 적잖은 인원이 사직서를 제출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새로운 기계를 익혀야하고 새로운 환자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배우면 되니까요. 다만 직원들에게 이전을 약속한 것만은 반드시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약자를 위한 공공의료가 이렇게 쉽게 무너져서는 안됩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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