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아리아 자랑 대회' 열고 싶어"
지난해 10월 대구 국제오페라축제가 한창일 때 야외 무대에서는 50, 60대 남녀로 구성된 낯선 배우들이 아리아와 합창 공연을 펼쳤다. 축제기간이었던 만큼 많은 음악인들이 오페라하우스에 와 있었지만 이 낯선 배우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야외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풍부한 음정으로 간이 객석을 채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민간 '오페라 가곡 교실' 회원들이었다. 음악 전공자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오페라를 배워 공연을 펼쳤던 것이다.
최상무(37·바리톤) '아모르 오페라'(오페라 사랑) 대표는 이 오페라 가곡 교실을 열고 시민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현재 경북대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근처 아트밸리에서 수업을 했지만 며칠 전 장소를 대구교대 정문 근처 '음악마을 이야기'로 옮겼다. 장소를 옮긴 만큼 단체 이름도 '아트밸리 오페라 가곡교실'에서 '아모르 오페라 가곡 교실'로 바꾸었다.
오페라 하면 얼른 떠오르는 생각은 '어렵다, 이태리어다, 지루하다' 정도가 아닐까. 그러나 이 오페라 가곡교실 회원들은 "즐겁고 신난다"고 말한다. 그 얼굴에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물씬 배어 있었다.
최상무씨가 오페라 가곡교실을 연 것은 이태리 유학 시절 경험한 충격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전국노래자랑' 정도로 볼 수 있는 아마추어 지역노래자랑대회에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침 대구는 국제오페라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만큼 의미도 있다, 싶었다.
'전공자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오페라 무대에 설 수는 없을까? 오페라 가곡을 배우면 오페라 작품을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클래식은 꼭 전공자들의 영역일까.'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오페라 가곡 교실'은 시도해본 적이 없는 분야였다. 가요교실이라면 모를까, 오페라 가곡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도 했다. 음대 동창들, 이태리 유학 시절 친구들도 기대보다는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1년 6개월 전 회원 2명으로 오페라 가곡교실을 열었다. 한달 두달 지나면서 회원들은 점점 불어나 20명이 됐다.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리아를 배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모였다. 20명 중에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소방서장 출신, 사업가, 주부, 학습지 선생님 출신, 은퇴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 한반 20명 상한선을 지키느라 더 이상 모집하지 않고 있다. (이 오페라 가곡교실의 월 회비는 5만원이다.)
"저희 오페라 교실은 노래를 부르는 곳이지 남들 노래를 듣고 감상하는 곳이 아닙니다."
최상무씨는 "흔히 가요교실에 가보면 다른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입만 벙긋벙긋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자는 생각으로 회원 수를 제한했습니다. 예비회원 신청자가 더 늘어나면 차라리 새로운 반을 꾸리더라도, 한반에 20명 상한선은 지킬 것입니다"라고 했다.
'무대가 곧 스승이다.'
최상무씨가 유학 시절 줄곧 들었던 말인 동시에 오페라 가곡교실 지도 방침이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피아노 배워본 사람? 하면 거의 다 손을 듭니다. 그렇지만 나와서 한곡 연주해볼 사람? 하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배우기는 했는데, 표현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아모르 오페라 가곡 교실'의 수업은 100% 노래다. 전공자들이 아닌 만큼 딱딱한 이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일주일에 한곡씩, 요즘은 한달에 적어도 한곡씩 무조건 배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자주 무대에 오른다.
오페라는 대부분 외국어, 특히 이태리어가 많은데 일반인들이 쉽게 배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이태리어 밑에 한국말로 발음 토를 달아주었어요. 2, 3곡 그렇게 했더니 새로운 노래도 떠듬떠듬 읽었고, 금방 잘 읽게 되더군요. 이태리말이 생각보다 읽기 쉬운 언어거든요. 초기에는 단어 뜻도 제가 하나하나 가르쳐 드렸는데, 지금은 악보와 가사를 나눠드리면 일주일 뒤에 모두 외워서 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전공하는 학생들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페라 교실 회원 정옥수씨는 "집안 일을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아리아를 흥얼거려요. 노래를 배운다는 게 참 즐거워요. 단순히 오페라 아리아를 배운다는 차원을 넘어,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느낌을 줍니다"라고 했다.
회원들은 지금까지 약 30곡을 배웠다. 그러니 국내에 소개된 웬만한 오페라 작품의 아리아는 거의 다 안다. 알고 보고, 알고 듣고, 소곤소곤 따라 부르니 공연 관람이 훨씬 즐겁다. 관람 뒤에는 꽤 전문적인 품평도 한다.
"감동이란 소리로만 주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전공자들은 소리 하나하나에 매달립니다. 타고난 목소리 문제로 고민하고, 소리 문제로 성악가의 길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회원들의 소리에는 인생이 배어 있습니다. 50년, 60년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기뻤을 것이고, 때로는 깊은 회한과 슬픔에 젖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행복감에 빠지기도 했겠지요. 그런 경험들이 목소리에 묻어 있기에 감정이 풍부하게 느껴집니다. 젊은 전공자들의 싱싱한 목소리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젊은 전공자들이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회원들은 각자 친구들 모임에서 '인기짱'이라고 한다. 아리아 한곡씩 뽑아 밋밋한 분위기를 확 바꿔주니 '대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녀들도 깜짝 놀란다. 재미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멋진 아리아를 불러주니 '우리 엄마, 아버지 최고!'가 돼 버린다. 자녀들 결혼식에서는 서로 축가를 불러주니, 축하도 그만한 축하가 없다.
'아모르 오페라 가곡 교실'은 배워서 부르는 것이 목적인 만큼 크고 작은 공연을 자주 연다. 지난해만 해도 오페라하우스 야외무대에서의 공연뿐만 아니라, 각종 동호회 초청공연, 송년 음악회, 문화예술회관 등에서 공연을 펼쳤다. 올해는 일본의 민간 오페라 교실 '무사시노 아카데미' 회원들과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때 연합 공연도 계획 중이다. 좀 더 실력을 쌓은 뒤에는 대구 국제오페라축제에 '비전공 시민팀'으로 참가하는 것이 꿈이다.
올해 4월 5일에도 공연이 예정돼 있는데, 회원들은 드레스를 맞춘다, 턱시도를 준비한다며 벌써부터 들떠 있다.
"대중예술도 중요하고, 클래식도 중요합니다. 클래식이 전공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시민들이 클래식에도 적극 참여할 때 문화예술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실이 더 많이 늘어나서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더 많이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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