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바가지도 애정 표현임을 알았습니다"
♥ 한밤 눈을 뜨니 당신은 없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유난히 춥고 긴 겨울도 다 가고 봄이 왔군요. 따뜻한 남쪽 나라인 이곳 거제에는 여기저기 봄을 재촉하는 꽃들이 많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에 실려 오는 상쾌한 바닷바람과 향긋한 봄꽃 향기에 잠시 일손을 멈추고 이 글을 씁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네요. 결혼하기 전에는 가끔씩 연애편지를 쓰곤 했는데 결혼 후에는 너무 무심했음을 용서바랍니다.
결혼 16년차, 그리고 주말부부 6년차. 돌아보니 벌써 시간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2004년부터 타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주말부부 대열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렀네요. 퇴근해서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아닌 직원 숙소로 퇴근하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밤에 자다가 몇 번을 깼는지 모릅니다. 깨어 보면 옆에 아무도 없어 허전한 마음에 애꿎은 TV 채널만 돌리다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이곤 했죠.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베개에 머리가 닿기만 해도 바로 잠들어버립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참 많이 깨달았습니다. 물, 공기처럼 말이죠. 여우같은 마누라의 잔소리와 바가지는 또 다른 애정 표현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토끼 같은 자식의 투정과 어리광도 다 부모를 향한 재롱이었습니다.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만이 통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표현들이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당신에게 많이 고맙고, 많이 미안합니다. 맞벌이 부부로 직장에 충실하면서 자상한 어머니와 엄한 아버지의 역할까지 1인 3역을 감당해야 했으니.(애들 얘기를 빌리자면 엄한 어머니역에 충실했다고 하지만) 가끔 힘들어 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바로바로 달려가서 도와주고 힘이 돼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당신은 잘 이겨내고 현규, 혜민이를 밝고 건강하게 잘 키웠고 내 집도 장만하였습니다.
지금도 주말에 집에 가면 항상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가 되어 있더군요. 오랜만에 집에 오는 남편을 위한 배려겠지요. 너무 힘들게 그리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따뜻한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월요일 새벽마다 출근한 남편이 사무실에 잘 도착하였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잠도 안 자고 노심초사하는 마음 잘 압니다. 장거리 운전을 다니면서 몇 번의 접촉사고 전과(?)가 있으니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안전운행 할 테니 그냥 믿고 푹 주무시오.
올해부터는 현규까지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주말부부가 아니라 주말가족이 되었네요. 주중에는 서로 얼굴 맞대지 못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주말에는 서로 얼굴 보면서 지지고 볶으며 행복하게 삽시다. 벌써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사랑합니다.
안영호(대구 남구 이천동)
♥ 남편 없는 하룻밤도 무서워서 뜬눈
우리 옆집은 주말부부다. 아저씨는 인천의 무슨 기업체에 다니시고 아주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시다. 평소에는 적막감이 흐르는 집이지만 주말이 되며 그 집 현관은 사람들 소리가 많이 난다. 항상 신혼부부같이 영화도 보러 가시고 외식도 하러 나가시기도 하는 그 부부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할 때나 매일 저녁 준비에 반찬거리 걱정을 할 때며 주말부부로 지내는 그분들이 더 부럽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게도 주말부부로 지낼 수 있는 날이 왔다.
남편이 대전으로 한 달간 교육을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밖에 만날 시간이 없었다. 겉으로는 안타까운 얼굴을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 남편 배낭 속에 넣어 주면서 '이것이 기회야. 한 달은 내 세상이야!' 하면서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남편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도 아이들이랑 대충 챙겨 먹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되고 잠을 자려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바람에 문소리만 덜컥거려도 무서웠다. 세상 모르고 자는 아이들 옆에서 엎치락뒤치락거리면서 뜬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다음날 남편은 "내 없으니까 좋지?"하면서 전화가 왔다. 나는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다는 말을 남편한테 하면서 "도저히 안 되겠어. 엄마 오시라고 해야 될 것 같아" 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남편의 전화를 끊고 친정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얼마가 지난 후 친정 어머니께서는 "세상에, 애 둘 딸린 엄마가 뭐가 무섭다고"하시면서 들어오셨다. 그래서 한 달은 친정어머니와 동침을 하면서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친 남편이 집으로 왔을 때 "여보, 고생 많이 했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라며 안아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그저 "허허"하고 웃었다. 부럽기만 하던 주말 부부가 하룻밤을 혼자 보내면서 부럽지가 않았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 "떨어져봐야 귀한 줄 알아"
'푸우 푸!' 머리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날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압력 밥솥 옆에는 김치찌개가 자글자글 끓고 있다.
문득 직장 때문에 아내와 떨어져 시골에서 살던 시절이 생각난다. 남자 혼자 객지에서 지내다 보면 조석으로 해 먹어야 하는 식사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아침밥은 해장국집에서 국밥 한 그릇으로 대충 때우면 되지만 저녁식사를 해결하기가 골치 아프다. 이순(耳順)을 코앞에 둔 대머리 중년 남자가 식당에서 혼자 밥먹기란 솔직히 죽을 맛이다. 주위의 눈초리도 눈초리이지만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군중 속에서 혼자 후루룩! 국물 떠먹는 꼴이란. 처량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날 대구에 있는 아내가 올라왔었다. 매양 밖에서 식사를 하지 말고 간단한 찌개 하나 정도는 집에서 끓여 먹으란다. 그러면서 오늘은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단다. 부엌칼을 손에 쥐어주며 파부터 썰어 보라고 한다. 껍질이 벗겨지고 흰 속살만 남은 파를 도마 위에 놓고 자근자근 썰어본다. 그런 다음 집에서 가져온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 양파 등을 송송 썰어 냄비에 넣고 매콤한 양념을 넣는다. 어설프기가 짝이 없다. 김칫국물이 부엌바닥에 흘러내리지를 않나, 고춧가루를 쏟지 않나, 아내의 갖은 타박 속에 난생 처음 김치찌개를 끓여봤었다. 다행히 내 입맛에는 맞았다. 그러나 아내는 짜다고 물을 더 부으란다. 하긴 내가 좀 짜게 먹는 편이긴 하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지만 입맛까지 동체는 아닌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쿡 웃음이 나온다. 물론 지금은 은퇴한지라 아내와 같이 살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어느 선배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부부는 떨어져 지내봐야 서로 귀한 줄 안다"라는 말이. 오늘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질하는 아내가 귀하게 보이는 아침이다.
김성한(경북 경산시 옥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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