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뤄진다' 아낌없이 올인…스포츠 선수 부모

입력 2010-03-13 08:00:00

신나희 선수의 어머니 임미숙씨가 대구 실내빙상장에서 딸의 피겨 동작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나희 선수의 어머니 임미숙씨가 대구 실내빙상장에서 딸의 피겨 동작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아들 정석·영석군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송영호·신윤희씨 부부.(왼쪽부터 어머니, 정석, 영석, 아버지)
두 아들 정석·영석군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송영호·신윤희씨 부부.(왼쪽부터 어머니, 정석, 영석, 아버지)

'확률적으로 볼 때 축구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사법고시 합격보다 어렵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산소탱크 박지성은 사법고시 수석 합격, 피겨 퀸 김연아는 외무고시 역대 최고점 합격보다 더 힘든 케이스, LPGA골프 신동 신지애는 행정고시 최연소 여자 수석 합격자에 빗댈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매년 1천명을 뽑는 사법고시 합격자보다 축구 국가대표팀 20~30명에 선발되는 것이 더 힘겹다. 베스트 11에 포함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축구 하나 잘 하면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 지구에서 반짝이는 스타 플레이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머지 선수들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르고도 다른 쪽에서 성공을 모색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김연아의 어머니는 자녀가 스포츠에 발을 담그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태양이자 우상과 같은 존재다. 그는 피겨 스케이트라는 종목을 선택한 딸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쳤다. 영어로 딱 들어맞는 표현이 '올인'(All-in)이다. 10여년 온몸을 던진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그동안 쏟은 피와 땀과 노력은 수백, 수천배의 가치를 창출했다. 딸의 성공이 국가적인 경사가 됐으니 운동선수로는 더 이상의 영예도 찾기 힘들다.

부모가 올인하는데도 실패하는 케이스는 일단 뒤로 하자. 자녀의 초대박 미래를 꿈꾸며 모든 생활의 중심을 운동하는 아들 딸에게 맞추고 있는 지역의 부모들을 만나 기대와 애환을 들어봤다.

◆'대구 피겨 퀸' 신나희와 어머니 임미숙씨

"나희야! 엄마가 정작 필요할 때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피겨 선수 신나희의 어머니 임미숙(47)씨의 안타까움과 눈물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일곱 살 때 피겨에 입문해 열한 살 때까지 김연아 못지않은 유명주였으나 지금은 대구 피켜 퀸에 머물고 있는 신나희(19·계명대 체육학과) 선수의 어머니는 딸을 보면 마음이 아리다. 특히 2010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곽민정 선수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펴 더욱 그렇다.

모녀가 피겨와 인연을 맺은 된 건 딸이 일곱 살 때. YMCA 피겨반에 참가했는데 담당 강사가 어머니에게 "이전에 피겨를 배운 적이 있나요? 다른 애들에 비해 배우는 속도와 기량이 훨씬 빠른데요"라고 말하면서부터다. 어머니는 주저없이 딸과 함께 피겨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때부터 초교 3학년 때까지는 임씨 역시 김연아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했다. 남편이 섭섭해할 정도로 모든 생활의 중심을 피겨하는 딸에게 맞췄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인 문제에 빠졌다. 임씨는 딸의 매니저 역할을 버리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후 신 선수는 장선미 코치가 맡아 가르쳤지만, 임씨는 수업료조차 제때 낼 수 없는 형편이 돼 버렸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아버지 신기준(50)씨는 아내와 함께 대구 칠성시장에서 도매 족발점을 운영하면서 딸이 피겨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형편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부모는 딸의 피겨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정이 어려워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다.

임씨는 "나희가 앞으로 4, 5년 정도 더 현역에서 뛰면 유니버시아드대회나 아시안게임 등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믿는다"며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잘 버텨준 딸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훔쳤다. 나희씨도 "부모님께 더 바라는 건 없다"며 "어려웠던 시절 몇번이나 피겨를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이제 더 큰 용기를 가지고 기량을 향상시켜 지금까지 뒷받침해 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청용·루니를 꿈꾸는 형제와 그 부모

"가정 수입의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이 두 아들에게 들어갑니다."

부부가 함께 인테리어업을 하고 있는 송영호·신윤희(68년생 동갑.예인 인테리어 운영)씨는 두 아들이 축구 국가대표가 돼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일반 가정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비용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있다. 주말에 편히 쉰다거나, 호사스러운 쇼핑을 한다거나, 가족끼리 고비용의 여행을 즐기는 법이 없다. 주말이면 아들의 중요한 시합이나 연습장에 나가는 게 일상이다.

평일 역시 주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테리어 공사가 없는 날이면 부부는 어김없이 두 아들이 뛰고 있는 대서중학교(대구 달서구 월배로) 축구팀을 찾아가 간식을 챙기고 아들의 훈련과정을 지켜본다. 부부는 감독, 코치보다 더 살림꾼이다. 두 아들뿐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려운 다른 선수들까지 배려해주기도 한다.

이런 덕분인지 큰 아들 정석(대서중3)군은 유망주로 발돋움하고 있다. 올해부터 중앙공격수로 자리를 옮긴 정석군의 기량이 쑥쑥 늘면서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기도 하는 것. 영국 프리미어리그 볼턴팀에서 맹활약 중인 이청용 선수를 닮고 싶다는 정석군은 "다른 친구들 부모님보다 더 헌신적으로 내가 축구하는 것을 도와주시니 힘이 난다"며 "반드시 국가대표가 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 같은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는 동생 영석(대서중1)군도 "전체적인 볼의 흐름을 잘 파악해 지능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석·영석 군의 외할아버지는 1세대 축구인으로 지역에서 이름을 날린 신덕만 전 대구축구협회 전무이사. 아버지 송씨는 "하늘에 계신 외할아버지가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외손자들이 축구 유망주로 크고 있는 걸 보며 대견해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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